서부극이다. 원작소설이 있고, 40여년 전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울 게 뭐 있겠냐는 생각은 접어도 좋다. 에단ㆍ조엘 코엔 형제라는 감독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이 인다. 1991년 '바톤핑크'로 칸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로 떠올랐고, 2008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며 대중들에게도 반 뼘쯤 영역을 넓힌 이들 아닌가.
코엔 형제의 전작인 '시리어스 맨'을 보고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관객도 안심해도 좋다.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올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더 브레이브'(원제 'True Grit')는 대중들에게 다가서려는 코엔 형제의 노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들의 광팬이라고 성급히 실망하진 마시라. 눈에 확 띄지 않지만 그들만의 인장을 지우진 않았다. 대중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부조리한 삶과 서늘한 유머를 버무리는 그들의 고약한 취향은 여전하다. 보편성이라는 주변 환경에 색깔을 맞추면서 실체는 그대로인 카멜레온 같은 연출이라고 할까. 코엔 형제는 이 영화로 생애 가장 높은 흥행 수익(북미에서만 1억6,000만 달러)을 올렸다.
영화는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친다'는 성경 잠언 구절로 시작한다. 열 네 살 소녀 매티(헤일리 스테인펠드)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채니(조쉬 브롤린)를 잡기 위해 술주정뱅이 연방보안관 카그번(제프 브리지스)을 고용하고, 오래 전부터 채니의 뒤를 쫓던 텍사스 특수경비대원 라 뷔프(맷 데이먼)가 이들과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가파른 물살을 탄다. 어른과의 말싸움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매티와 카그번, 라 뷔프는 티격태격 싸우다가 채니와 그의 보호자인 악당 네드(배리 펩퍼)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주님의 은총 외에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매티의 독백처럼 씁쓰름한 복수가 이어진다.
원조 영화가 그랬듯 정통 서부극은 아니다. 남자 주인공들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영웅이라기보다 적당히 속물이고, 인간적 허점을 지녔다. 대의보다 돈에 더 눈이 멀어있고, '누가 더 총을 잘 쏘냐'식의 헛된 공명심에 매달린다.
110분의 상영시간 내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티와 카그번, 라 뷔프의 웃음기 깃든 대화가 꽤 많은 폭소를 불러내며 적당한 서스펜스가 긴장감을 불러온다. 곳곳에 숨겨진 코엔 형제의 악취미를 찾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교수형 직전 다른 사형수들과 달리 최후의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인디언, 곰 가죽을 둘러쓴 떠돌이 치과의사의 모습 등이 쓴 웃음을 부른다.
배우들의 연기가 두루 좋다. 스테인펠드의 당돌한 연기도, 데이먼의 어리숙한 연기도 훌륭하지만 브리지스의 노련함에는 못 미친다. 의뭉스러우면서도 정이 깊은 연기는 브리지스의 평소 모습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자연스럽다. 지난해 '크레이지 하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가 2년 연속 오스카를 가져가도 별 군말은 없을 듯하다.
원작 소설은 찰스 포티스의 'True Grit'이며 1969년 존 웨인 주연의 '진정한 용기'로 처음 영화화됐다. 카그번 역의 웨인은 1970년 이 영화로 환갑을 넘긴 나이에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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