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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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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 특집

입력
2011.02.2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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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신냉전인가, 공동체인가”(백영서 연세대 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통권 151권)가 동아시아라는 화두를 다시 집었다. 동아시아 담론은 1990년대 초 지정학 논의의 한 가닥으로 태동한 뒤 인문ㆍ사회과학의 범주 속에 나름의 계보를 형성하며 굵은 흐름이 됐다. 하지만 차이메리카(Chimerica)로 불리는 중국의 초강대국화, 연평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에서의 충돌 등 정치적 변동은 공동체로서 동아시아라는 공간에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또 여러 차원에서 동아시아라는 단위가 범박하게 소비돼 버블 논란도 없지 않다.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인 백영서 교수는 그러나 “동아시아 담론은 폐쇄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비판적 지역주의로서 세계사의 변혁을 지향하게 만든 효모였다”며 “오늘의 국면에서야말로 이 담론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동아시아 담론과 민중 연대

쑨꺼(孫歌)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기고문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沖繩), 대만 진먼(金門) 등의 사례를 들며 민중 차원의 연대에 주목한다. 그가 동아시아에서 찾아낸 “단서”는 이렇다. “과거 진먼과 오키나와 그리고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있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 때문에 그 최전선의 의미도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그들이 모두 냉전 구조 하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서양 편에 있으면서 직ㆍ간접적으로 미국의 영향과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쑨 연구원이 말하는 민중은 민족국가 단위의 서사 속에서 자기주체성이 지워진 민중이다. 예컨대 베트남전쟁 당시 오키나와인은 파업을 진행하며 ‘우리가 24시간 파업하면 그만큼 미군의 발목을 잡아 베트남유격대가 24시간 더 주동적으로 싸울 수 있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30년 뒤 오키나와에서 미군 기지 반대 움직임이 벌어졌을 때 이들은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한국 민중과의 연대를 희망했다. 그는 이런 흐름에서 국가의 틀을 초월한 민중 연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단수(單數) 집단으로 환원되는” 민중의 존재와 논리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쑨 연구원은 구체적 일상으로부터 공동체의식을 추출하는 오카모토 케이토쿠의 수평축 사상, 분단을 일상적 구조로 분석하는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을 동아시아 민중 연대의 이론적 틀로 차용한다. 그는 “비판적 지식인이 현실을 벗어난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담론에 만족할 수 없고 또 민중의 삶에 의해 규정되는 ‘일상의 규율’에도 동일시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바로 창조적 변화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연평도 포격과 국가주의 극복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고문에는 덧글이 붙어 있다. 본 논문은 지난해 열린 ‘2050년의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 포럼의 발제(11월 5일) 원고를 다듬은 것이고, 덧글은 18일 뒤 터진 연평도 포격 이후 쓴 것이다. 백 교수는 “분단국가 특유의 악성 국가주의가 위기와 더불어 더욱 창궐하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국가 및 국가주의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 지구적인 성찰을 국지적 상황에 대한 점검과 결부시켜 진행하는 공부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백 교수는 먼저 통일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과제와 국가주의 극복이라는 세계적 보편 과제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그는 “(통일은) 분단국가 특유의 기형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이라는 현대 세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통일 과정에서는 “인권과 환경, 평화, 성차별 철폐와 경제적 격차 해소 같은 시민적 의제들이 민족주의적 의제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백 교수의 전망이다. 또한 통일은 한반도 비핵화, 동북아 평화체제 건설 등 국제적 의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성과가 나오기만 한다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2011년의 초입에서’라는 제목을 단 덧글에서 그는 연평도 포격을 “감내할 수 없는 기존 상황을 타파하려는 승부수”로 파악하며 “분단 체제 고착기에는 볼 수 없었던 충돌과 돌출 행위가 잦아지는 말기 국면”으로 현재를 진단한다. 백 교수는 이명박정부의 퇴행에 대해서도 “남북 화해의 큰 흐름은 머지않아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우리가 당장의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이유로 인류 차원의 발본적 문제(국가주의 극복)를 제쳐둘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체제를 골간으로 하는) 근대 세계 체제에 더 효과적으로 적응하면서 근대 자체의 극복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결론짓는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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