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착같이 아르바이트 했는데…빚나는 졸업장만 남아"
올해로 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3년 째. 주모(29)씨는 졸업 후 1년여의 백수생활 끝에 동화책을 만드는 소형 출판사에 가까스로 취직했다. 교정ㆍ교열 업무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각종 잡일을 도맡아야 했다. 쥐꼬리만한 급여도 그나마 제때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7개월 만에 퇴직,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지금껏 이력서를 낸 회사만도 100여곳에 달하지만, 그는 여전히 실업자 신세다. 학창시절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 등으로 불어난 빚은 현재 1,700만원 가량. 연체자가 되면 취직 기회가 아예 봉쇄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커피숍이나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악착같이 버티고 있지만, 언제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지 두렵기만 하다. "이러다 정말 평생 일자리 없이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공포감이 몰려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사회 첫 출발부터 낙오자가 된 기분이예요."
대학 졸업생치고 '채무자'아닌 이들이 없다. 부유한 가정 출신도 있겠지만, 상당수 젊은이들은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빚을 떠안는다. 1년에 족히 2,000만원에 육박하는 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하자면 달리 방법이 없다. 잡코리아가 지난 해 대학 졸업예정자 1,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인당 평균 부채 규모는 1,125만원. 10명 중 7명 이상(72%)이 빚을 안고 있다. 오죽하면 대학은 더 이상 우골탑(牛骨塔)이 아니라 이제 인골탑(人骨塔)란 얘기까지 나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만 1년이라도 더 학생 신분으로 남길 원한다. 학교 문턱을 넘는 순간 곧 바로 실업자 신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실업자(1월 91만8,000명) 중에 30세 미만 청년 실업자가 36만3,000명. 실업자 10명 중 4명은 힘찬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청년들인 셈이다. 이 뿐이랴. 취업준비자 57만명에 구직 단념자도 24만명. 지금 이 순간, 족히 100만명 안팎의 젊은이들이 사실상의 백수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졸업하자마자 취업에 성공한 이모(28)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 그리고 리서치회사 근무 3년.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왔다. 학창 시절에는 과외 2~3건은 기본이고 유치원생 셔틀버스 픽업 등 돈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에게 지금 남은 건 2,200만원이 넘는 빚. 200만원 남짓한 월급에서 매월 60만원 가량 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했고, 부모님 대신 주공아파트 월세금(9만원)이나 생활비도 일부 부담해야 했다. 결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이씨는 "공부도 나름 잘 하고 일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맞는 권모(23)씨는 4월부터가 걱정이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살면서 지금까지 3차례 대출을 받았다. 이미 1건(460만원)은 매월 15만원씩 갚아나가고 있는데, 4월이 되면 또 1건의 대출(500만원)에 대해 상환이 시작된다. 학교 생활과 동시에 학원 파트타임 국어강사를 하면서 버는 돈은 15만원 남짓. 그나마 그가 다니는 대학의 등록금이 올해 동결이 된 것이 다행이라지만, 학기당 360만원인 등록금도 감당하기엔 몹시 벅차다."4학년이면 취업 준비에 전념을 해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에요.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두어 건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그렇게 되면 졸업을 한다고 해도 일자리 구하기는 더욱 더 힘들어 지겠죠?"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빚더미 위에 앉은 백수 신세가 되어야 하는 현실. 과연 젊은이들이 이 속에서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대학 4년간 들어간 돈 1억 넘는데 실업자로 사회 첫발"
1억 520여만원. 2년 전 서울 유명 사립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이모(29)씨가 부산에서 상경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쏟아 부은 돈이다. 그나마 먹고 입는 돈은 뺀, 등록금(4,000여만원)과 미국 어학연수 1년 비용(3,000여만원), 주거비(2,800여만원), 학원비(700여만원)를 합친 것만 이 정도다.
임용고시에 여러 번 낙방한 그는 지금 진로를 공무원으로 바꾸고 서울 신림동에서 보증금 100만원, 월세 2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사실상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위해 1억원 이상이 들고 그런데도 아직 취직조차 못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라고 반문했다.
대학교육비는 이제 웬만한 서민가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작년 사립대 연 평균 등록금이 753만원이었고 예ㆍ체능과 공대 계열은 1,000만원을 훌쩍 웃돌고 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가정 하에 대학 4년간 최소 1억원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비도 만만치 않다. 책 <미친 등록금의 나라> 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가의 평균 하숙비는 독방 월 40만~50만원인데 100만~200만원의 하숙보증금은 별도다. 미친>
기숙사에 들어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대학들이 민간자본을 끌어다 기숙사를 지으면서 학생들에게 200만원에 육박하는 고액의 사용료를 물리고 있다. 숭실대의 민자 기숙사 1인실 비용이 한 학기에 199만4,500만원,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는 179만8,850만원이다.
여기에다 미국을 기준으로 연수비용이 연 평균 3,000만원 들고, 최근 설문조사(아르바이트정보 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대학생의 학원비는 월 평균 31만6,000원이라고 한다. "연수 안가고 학원 안 다니면 되지 않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스펙이 강요되는 사회분위기에서 그렇게 독야청청하기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전문가들이 보는 해법
대학 재학기간과 비례해 빚은 늘어나고, 일자리가 없어 빚 갚을 기회 조차 없는, 그래서 희망조차 잃게 하는 이 척박한 현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첫 번째는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경감이다. 연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고액 등록금과 관련, 정부가 고등교육에 지원하는 예산(약5조원ㆍGDP 대비 0.6%)과 사립대학 법인이 대학에 지원하는 '법인전입금' 비중(4.1%)을 늘리면 해결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국고지원을 적어도 OECD 국가들 수준(GDP 대비 1%)으로 높이고, 대학들이 건물매입 등 자산확충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면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산배분을 늘리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정부의 정책적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학자금 대상범위를 넓히고 장학금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시행 1년 만에 찬밥 신세가 된 '든든학자금'(취업후학자금상환제ㆍICL)이 단적인 예. '소득7분위 이하 학생으로 평균B학점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에, 높은 이자 그리고 상환 시 복리방식이 부담돼 학생들이 외면하고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정부가 ICL을 내놓으면서 일반 학자금 대출보다 대상 범위를 더 좁혔고 대학은 장학금을 더 줄이고 있는 추세"라며 "저소득층 학생들이 이자 감면 등 혜택을 볼 수 있게끔 학자금 제도를 정비하고, 대학도 성적위주로 책정돼 있는 장학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조력'에서 '대출'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막연한 일자리가 아닌 질 좋은 일자리 창출정책이 절실하다. 예컨대 현행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매년 공공기관 정원의 3%이상씩 청년(15~29세)을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별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 이를 보완한 개정안(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청년을 정원의 5%까지 의무 고용해야 한다)은 수 개월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상동 센터장은 "정부와 국회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인적 자원을 독점하면서 성장한 대기업들도 인재를 적극적으로 키우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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