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가 관공서 5곳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는 등 전시 상태입니다." 리비아 벵가지로부터 동쪽으로 430㎞ 떨어진 토브룩에서 일하던 한인 건설사 직원들이 탈출 시도 48시간 만에 가까스로 이집트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토브룩에서 리비아주택공사(HIB)가 발주한 도시기반공사의 감리ㆍ감독을 맡은 공간(Space)그룹 이동희(57) 지사장과 직원 9명은 폭도들의 공사현장 습격 후 탈출을 결행키로 했다. 20일 오전 벵가지 공항이 폐쇄돼 수도 트리폴리까지 육로로 이동할 생각으로 9인승 밴 승합차를 대절했다. 하지만 서쪽으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즈다비아에서 트리폴리로 향하는 길이 끊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에서는 벵가지 인근에 있는 모 건설사의 발전소 현장으로 대피하라고 권유했으나 현장상황은 달랐다. "사설 경비원을 동원해 지키고 있지만 역시 불안한 상태"라는 전화통화를 한 뒤 이들은 길을 거슬러 토브룩으로 되돌아왔다. 이 지사장은 "토브룩에 거의 왔을 때쯤 화약고가 터지는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이 보여 모든 직원들이 매우 위축됐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21일 오전 트리폴리와는 정반대 방향인 이집트 국경 쪽으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도시기반공사 시공사인 이탈리아 회사 직원 20명과 터키인 60명이 합세했다. 사막 도로를 따라 2시간 30분을 달리는 동안 도시마다 총기를 휴대한 자경대를 만났고, HIB 측에서 만들어 준 통행허가증을 보여주며 이들의 검문소 3곳을 차례로 통과했다.
이 지사장 등은 리비아 당국의 통제로 휴대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자 문자서비스(SMS)로 한국의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이 지사장은 "국경에 도착해보니 리비아 쪽에는 세관원이나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전혀 없고 민간인 복장의 자경대원들이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며 "이들 자경대원은 국경을 넘으려는 이집트인들이 수없이 몰려오자 행정절차를 생략하고 그냥 통과시켜줬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2년 전부터 토브룩에서 공사감리를 해왔는데, 이렇게 긴박한 일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천신만고 끝에 이집트로 넘어오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측에서 제공한 차량으로 23일 새벽 카이로에 도착, 하루를 보낸 뒤 24일 오후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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