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무차별적인 살육 진압으로 수도 트리폴리는 거대한 시체 안치소로 변했다.
23일 트리폴리 거리는 황량할 정도로 조용했고, 거세게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시민들은 "거리에 나오면 사살하겠다"는 친정부 세력의 경고에 지레 겁을 먹고 하루종일 집에서 숨어 지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리비아인과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된 친정부 민병대가 '살아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실탄을 난사하는 바람에 부상자들이 길거리에 버려진 채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거리 곳곳과 건물 옥상에 배치된 특공대가 시위대를 조준 사격했다면서 "총에 맞아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아무도 거리를 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가 격렬했던 동부 알바이다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언이 속속 전해졌다. 한 시위 참가자는 "(보안군은) 비행기로 폭격을 가하고 탱크를 동원해 사람들을 죽였다. 최악의 상황이다"고 22일 말했다.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에 이어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택한 '벼랑끝 전술'의 종착역은 석유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중앙정보국(CIA) 전 중동지역 담당자인 로버트 베어는 23일 시사주간 타임을 통해 "카다피가 보안군에 석유 생산시설을 파괴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 부족들을 위협해 전 국토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린 뒤 재집권 가능성을 엿보겠다는 것이다.
석유를 무기로 한 카다피의 위협은 그의 절박한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 카다피가 42년간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며 다양한 부족들을 아울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카다파와 마가리하 외에는 대부분의 부족들이 등을 돌렸다. 군부 외에 부족의 움직임이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알리 브라히미 교수는 "카다피는 동부지역에서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이는 권력 균형의 근간이던 부족적 전통이 깨진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와르팔라 지도자들이 이미 카다피를 축출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카다피에게는 차라리 내전이 유리할 수 있다. 타임은 "카다피도 권력 유지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는 싸울 돈과 무기가 충분해 리비아를 제2의 소말리아로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카다피가 대국민 연설 직후 이슬람 무장세력을 대거 석방한 것도 혼란을 더욱 부추기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카다피가 쫓겨날 경우 사태는 진정될까. 리비아에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부족만 30여개에 달한다. 카다피처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동부에 밀집해 있는 막대한 양의 원유를 놓고 부족간 암투와 분쟁이 장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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