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폭발하자 관객들 너나없이 선율에 몸을 맡겨굴곡진 생을 말하듯… 짙은 블루스록 리듬 타고사랑ㆍ아픔ㆍ추억으로 '흠뻑'
푸른색 펜더기타가 튕겨내는 화려한 조명이 에릭 클랩튼의 흔들림에 따라 난반사된다. 파란색 줄무늬 셔츠에 기타 하나 덜렁 메고 등장한 그가 왼손으로는 기타 넥을, 오른손으로는 피크를 잡고 위아래로 수 ㎝ 움직였을 뿐인데 수천명이 넘는 관객의 몸은 그 움직임을 따라 기타 줄을 오르내린다.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은 짙은 블루스록의 리듬 속에 사랑과 아픔, 추억의 공간으로 변모해 갔다.
2007년 이후 4년 만에 클랩튼의 세 번째 내한 공연이 20일 오후 7시 열렸다. 그가 심각한 이명에 시달려 2007년의 내한 공연이 마지막 한국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었다. 하지만 올해 66세인 그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 두 번의 내한공연 때 깊은 감명을 받은 국내팬들의 열렬한 요청에 대한 클랩튼의 응답이다. "나를 사랑해 주고 기억해 주는 한국팬들을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았다"는 클랩튼. 이제 더는 그의 음악을 한국 땅에서 들을 수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노래가 울려 퍼질 때마다 관중들은 그를 애타게 갈망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그의 19번째 스튜디오 앨범 '클랩튼' 이후 2011년 투어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공연의 첫 곡은 '키 투 더 하이웨이(Key to the highway)'였다. 클랩튼이 몸담았던 전설적 블루스록그룹 '데렉 앤드 더 도미노스' 시절의 곡으로 비비킹과도 협연한 적이 있는 단골 블루스 레퍼토리다. 경쾌하면서도 화려한 기타 연주와 함께 클랩튼이 묵직한 목소리로 가사 첫마디인 "I got the key to the highway"를 외치자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노바디 노즈 유 웬 유아 다운 앤드 아웃(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리틀 퀸 오브 스페이즈(Little queen of spades)'가 퍼져 나가더니 이윽고 클랩튼의 불후의 명곡 '레일라(Layla)' 도입부의 익숙한 기타음이 무대 위에서 폭발했다. 관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목청껏 따라 불렀다. 특히 클랩튼이 "레일라"를 부르짖을 때마다 관중들은 그의 외침에 응답하듯 모두 무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날로그의 향수는 도도하다. 전자음의 반복과 단절, 분열이 요즘 디지털 음악 시대의 코드라면 클랩튼의 굳은 살 박힌 손이 기타 위에서 빚어내는 음악은 그 심연이 다르다. 아마도 마약중독과 아들의 갑작스런 사망 등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갑자기 울컥하게 된다"는 어느 관객의 대답도 그의 굴곡진 생과 무관하지 않다.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클랩튼의 공연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둘째 아들인 김정철이 참석했다. 2006년 북한이 클랩튼의 평양 공연을 추진했을 정도로 김정철은 클랩튼의 광팬이라고 한다. 폭압과 독재, 인권 실종의 땅에서 독재자의 아들 김정철이 자유 정신으로 가득한 클랩튼에 사로잡힌 모습은 아이러니컬하다.
공연은 어느새 마지막으로 치달렸다. 공연 내내 혼신을 다한 노래 이외에는 별 말이 없던 클랩튼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예전 그의 라이브 앨범에서 언제나 들을 수 있었던 청중을 향한 감사의 인사. "생큐" 그 말 한마디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약 없을 그리움에 아쉬움은 더욱 짙어졌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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