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막걸리에 오징어 안주를 곁들인 뒷골목 선술집의 이야기판이라고 할까. 만담 풍의 구성진 가락도 그렇거니와 야바위판 같은 세상에 대한 조롱과 푸념 섞인 독설적 세평(世評)은 그 술판의 단골 테마. 이어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희화화와 자기 변명, 종내 억하심정을 해소시키려 성적 일탈로 나가는 것이 수순이다.
소설가 김원우씨의 <돌풍전후> (강 발행) 속 주인공인 임모 교수가 털어놓는 회고담이란 게 딱 이 모양새다. 지방 사립대에 근무하는 한 교수가 퇴직한 선배 임 교수의 회고담 ‘돌풍전후’를 이메일로 받아 이를 소개하는 액자소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먹물이 먹물을 조롱하고 풍자하다 자기마저 희화화하고 마는, 일견 시원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세태 비판 소설이다. 한바탕 굿판 후 막걸리 집을 나설 때의 그 느낌 그대로. 돌풍전후>
<돌풍 전후> 는 김씨가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소설. 맛깔 나는 문장과 만연체의 가락으로 속물들의 이중성을 까발려 온 김씨 특유의 농익은 이야기 솜씨는 여전하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어휘들도 많다 보니 읽기가 수월치 않지만 오징어 안주처럼 오래도록 씹다 보면 중독성 강한 진미가 우러나온다. 모서리에서의> 돌풍>
액자소설 속 임 교수가 회고하는 시대는 1980년 서울의봄 전후다. 언론들이 “봄이 왔다”며 관제 나팔을 부는 와중에 광주에서 학살극이 벌어진 그 배반의 시절, 한 지방 사립대를 배경으로 교수 사회의 비굴한 풍속도가 신랄하게 그려진다. 학생 시위를 감독한다는 명분으로 시위대 울타리 노릇이나 하는 교수들은 천인공노할 사태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되레 대학 사회에 불어 닥칠 해고 칼바람에 전전긍긍한다.
이 격변기를 대응하는 먹물들의 부류는 세 가지. 학교 측에 붙은 충성파, 눈치껏 살아남으려는 기회주의파, 분통은 터지지만 딱히 방법은 없는 ‘될 대로 되라’ 파. 임 교수는 속으로 온갖 독설을 퍼붓지만 ‘너도 별수 없잖아’라는 자책에 홀로 실룩거리고 마는 세 번째 부류. 그가 탈출구로 삼는 것은 미혼인 동료 심 교수와의 혼외정사다. “내일 당장 연구실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매일 저녁 다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는 좀체로 어려웠다”는 그는 이 혼외정사를 폭압적 시대를 버티는, 일종의 저항으로 인식한다. “내 사생활은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위권이었다”면서. 이마저도 속수무책인 먹물의 자기 방어를 보는 듯해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 대목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임 교수의 독설은 “거짓투성이를 실상인 양 익히고, 배우고, 가르치는 셈이니 이런 야바위판이 어디 있겠소”라며 지금 여기의 대학 사회까지 겨냥한다. 그러나 임 교수 역시도 고작 한때의 혼외정사를 저항이나 혹은 운명적 인연처럼 엮어 보려는 먹물이 아니든가. 회고록을 읽은 한 교수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는 것처럼. 이 같은 ‘먹물의 자기 희화화’라는 주제의식이 현재 지방사립대 교수로 근무 중인 소설가 김씨 자신에게로도 이어질 수 있을 텐데, 그는 ‘작가의 말’에서 “그래도 이 세상을 올바르게 직시하고 그 제도들마다의 난해한 면면을 바꿔놓으려는 능력과 소명의식은, (…) 지식 그 자체에 과부하된 짐이 아닐까 싶다”며 한가닥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돌풍전후> 는 그러니까 80년대를 회고하는 여타의 비장한 후일담과 다른 궤도에 있다. 의미심장한 뒷맛이라면 우리 시대가 더 이상 80년대를 비장하게 회고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다.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다는 아스팔트의 주인공들이 이미 제도권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나. 그런데도 세상이 여전히 가짜 투성이라면 그 시대를 야유와 자기 모멸 외에 어떤 식으로 회고할 수 있을까. 돌풍전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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