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첨벙첨벙 목욕 다 했으니까 닦고 나가자.”
“(비누를 만지작거리며) 시여.”
“뭐가 싫어, 목욕탕에 너무 오래 있으면 추워. 아이, 착하다, 얼른 일어날 거지?”
“(손으로 물을 튀기며) 시여, 더 놀 거야!”
목욕을 끝내고 나가려 할 때마다 아이와 벌이는 실랑이다. 할 일이 쌓여 있거나 너무 피곤할 땐 말 안 듣고 버티는 아이 고집이 밉다. “이 녀석, 왜 이리 말을 안 들을까” 하며 언성을 높이면 아이 입이 삐죽거리기 시작한다. 화난 표정으로 암말 않고 물기를 닦고 옷을 입히면 이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조그만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는 순간 그렇게 맘이 약해질 수가 없다. “감기 걸릴까 봐 그랬지, 엄마가 미안해”하고 안아줄 때마다 생각한다. ‘잠깐을 못 참고 또 아이를 울렸네’ 하고.
그러고 보면 아이의 최고 ‘무기’는 눈물이지 싶다. 어떨 땐 이 녀석이 울면 엄마 마음이 약해진다는 걸 눈치채고 있는 것도 같다.
눈물에도 종류가 여럿 있다. 평소 안구 표면에 아주 조금씩 흘러내리면서 눈을 촉촉하게 하고 이물질을 씻어내는 기본눈물, 양파를 썰거나 먼지가 눈에 들어갔을 때 저절로 나오는 반사눈물,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날 때 흘리는 정서눈물의 세 가지다. 이 가운데 정서눈물은 사람이 가진 특권이다. 가끔 소나 개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의 눈물은 감정 변화가 아니라 생리작용의 결과라는 게 많은 과학자들의 견해다.
지난달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눈물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스라엘 연구팀이 20~30대 남성 50명에게 여성이 흘린 눈물의 냄새를 맡게 했다. 그랬더니 공격성향을 나타내게 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피부의 전기반응이나 심박수 역시 줄었다. 눈물과 같은 농도의 소금물 냄새를 맡았을 땐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말이다. 연구팀은 “눈물 냄새를 맡은 남성들이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고 흥분을 가라앉혔다”며 “남자가 여자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지는 건 눈물이 특별한 화학작용을 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사람의 정서눈물에 과학자들이 호기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는 것. 아이 눈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엄마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화학작용을 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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