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좋아 시인들이 나들이 삼아 시골 집필실 찾아왔다. 손님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이웃 읍 소재지의 중국집이 만원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얻기 위해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그 중국집은 손으로 직접 면을 뽑아내는 수타 자장면이 유명한 집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공단에서 몰려드는 손님들로 해서 붐비는 집이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날은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원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얼굴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1960, 70년대 우리시대 졸업식의 최고 메뉴도 자장면이었다. 그 시절 가난한 부모님들이 마련해주던 축하자리였다. 오래 기다려 자리가 났다. 우리가 앉은 옆자리도 첫째 딸의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젊은 부모가 마련한 자리였다. 우리시대와 다른 풍경은 깐풍기, 탕수육 같은 몇 가지 요리를 시켜 먹고 마지막에 후식 삼아 자장면을 먹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에겐 자장면이 전부였다. 어쩌다 투정을 부리면 어머니는 지갑을 몇 번이나 열어보다 자장면을 곱빼기로 시켜주거나 군만두를 추가시켜 주었다. 중국집에 자장면 말고 맛있는 요리가 있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았다. 자장면만 있어도 배부르고 행복했던 시간. 초,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져 자장면 한 그릇에 열광하던 내 얼굴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