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냥, 수백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비난 성명 외에 국제사회가 리비아에서 일어나는 '학살' 수준의 강경진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난해 리비아를 유엔 인권위원회 회원국으로 선출했다는 비난이 국제사회를 향해 꽂히고 있는 형국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1일 전투기와 헬기까지 동원한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폭력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용납할 수 없는 유혈사태를 중단하라"고 카다피에게 촉구했다. 유럽연합(EU)도 외교장관회의에서 폭력을 즉시 중단하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응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그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반정부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은 리비아 국내문제다. 섣불리 개입할 경우 '내정 불간섭 원칙'에 위배된다.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관의 이브라힘 다바시 부대사가 이날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카다피를 전쟁범죄자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카다피를 집단살해죄 등으로 회부할 경우 ICC가 조사할 수 있으나 시일이 오래 걸리는데다 신병확보가 어렵다. 보스니아 전범인 전 세르비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가 ICC와 비슷한 형태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서기까지는 13년이나 걸렸다.
유엔 평화유지군(PKF)이 파견되기 위해서는 분쟁 또는 내란을 겪고 있는 해당국가가 유엔에 요청해야 한다. 현재 탄압세력인 카다피 정부가 이 요청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국제사회의 주요 압박 수단은 언어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지난해 리비아를 유엔 인권위 이사국으로 선출한 국제사회의 행동은 직접적 비난에 직면해 있다. 당시 국제 인권단체들은 카다피가 "포악하고 가장 오래된 독재가"라며 반대했으나 수전 라이스 미국 유엔대사 등은 "문제가 있어도 인권위 안에서 개선에 노력하는 게 도움이 된다"며 묵인했었다.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가장 높은 기준을 지키는 회원국이 인권위 이사국에 선출된다'는 이사국 선출 규정이 무색하게 리비아를 비롯해 바레인, 중국 등이 미국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인권위 이사국에 포진해 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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