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가 무관으로 전락함에 따라 국내 바둑계는 이세돌을 필두로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황소 3총사'와 '90후세대' 박정환 등 5명이 타이틀을 나눠 갖는 군웅 할거 시대로 접어 들었다.
이세돌이 지난해 KT배와 물가정보배서 우승하며 12개월째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지만 타이틀 개수에서는 기존 맥심커피배에 올 들어 국수와 천원을 추가, 3개 기전으로 영토를 넓힌 최철한이 오히려 앞선다. 여기에 박영훈이 명인, 원성진이 GS칼텍스배를 근거지로 삼아 호시탐탐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으며 원익배를 갖고 있는 소년 장사 박정환이 KBS바둑왕전에서 백홍석과 함께 결승에 진출, 타이틀 추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과연 이같은 5강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예측불허다. 하지만 과거 조훈현이나 이창호 시대와 같이 절대 강자가 천하 통일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조남철이 퇴장한 후 한동안 김인 윤기현 하찬석 등이 타이틀을 나눠 갖고 할거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훈현에 의해 평정됐고 조훈현 이후에는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바로 이창호로 대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 춘추전국시대는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우선 조훈현이나 이창호 같은 절대 강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세돌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창호는 물론 박영훈 최철한 등 동시대의 라이벌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훈현이나 이창호가 전대의 강자들과 맞대결을 펼쳐 승리를 거두고 당당하게 대권을 넘겨받은 데 반해 이세돌은 이창호를 자기 손으로 밀어내지 못했다는 게 큰 부담이다. 이세돌은 그동안 이창호와의 타이틀매치에서 2승4패를 기록했다.
오히려 중요한 고비마다 이창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건 바로 최철한이다. 최철한은 이창호가 절정기를 구가하던 2004년 국수전과 기성전 도전기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이창호의 천적으로 부상했다. 이후 한동안 부진했지만 2009년 응씨배 결승에서 다시 이창호를 꺾고 슬럼프 탈출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금까지 이창호와의 타이틀 매치에서 6승2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0연승을 달리며 올해 다승 부문 선두로 올라섰고 4개월만에 랭킹 2위에 복귀해 이런 추세라면 1인자로 올라서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이 밖에 박영훈 원성진 조한승 등 '80년대생'과 박정환 김지석 강동윤 등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이른바 '90후세대' 가운데 누구라도 모두 정상에 오를 능력을 갖춘 맹장들이다. 여기에 이창호가 컨디션을 회복, 권토중래를 외치며 다시 타이틀 쟁탈전에 뛰어들 경우 한국 바둑계는 당분간 정말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대혼전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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