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함을 비난은 해도 범죄는 아니다." 한국일보 16일자 10면 톱기사의 제목이다. 서울역사 대합실에서 만취해 잠자던 노숙자를 한겨울 새벽 영하 9.7도의 날씨에 밖으로 보내 저체온증으로 사망케 한 사건에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노숙자를 추위 속으로 내몬 사람은 역무원이었다.
4년 전 한여름 새벽 아파트계단에서 술 취해 잠든 입주민을 그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했으나 그냥 두었다. 그는 잠결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고 머리를 다쳐 몇 시간 뒤 사망했다. 법원은 경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 역무원과 그 경비원 중에 누가 더 나쁠까. 겨울과 여름이란 상황이 다르고, 밖으로 내몬 적극적 행동과 그대로 둔 소극적 행위가 다르다. 노숙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고 입주민은 스스로 계단에서 굴렀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비정함'이나 '범죄'의 차원에서 그 역무원이 그 경비원보다 더 '반(反)사회적ㆍ비(非)공동체적'이지만 법원 판결은 오히려 반대였다.
비정함과 범죄의 판단은 달라야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 제정 논란이 있다. 심각한 위험이나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의 특별한 피해가 우려되지 않는데도 외면하면 처벌한다는 법이다. 사회적ㆍ공동체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일찍부터 제정했다. 강력하게 시행하는 나라는 프랑스인데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할 수 있는데도 고의로 기피한 자는 5년 이하의 구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호수에 빠진 사람 근처에 있었으나 자리를 피했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익사하지 않았음에도 3년형을 선고한 사례가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는 조금 다르다. 러시아 형법은 '가능한 구조를 모른 기피했을 경우 6개월 이하의 징계노동이나 사회적 비난에 의해 처벌 받을 것이며, 사회적 압력조치의 대상이 된다'는 식으로 형벌의 내용을 색다르게 규정했다. 한편 중국은 일반적으로 구조의무를 지우지는 않고, 구조 과정에서 생긴 피해나 위험에 대해 손해배상 의무를 면제해주는 정도다. 일반인에게 구조의무를 강요하는 수준(형량 기준)으로 보면 프랑스-독일-이탈리아-핀란드-러시아 정도의 순서가 될 터이고, 중국은 소극적으로 권유하는 수준이다.
우리 나라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없다. 다만 '위험발생 방지의무가 있거나 원인을 야기한 자'에게는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우고(형법 제18조), '보호할 법률상ㆍ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에 한해서 구조하지 않은 죄를 묻고 있다(제271조). "비정함을 비난은 해도 범죄는 아니다"는 역무원에 대한 판결을 이해할 수 있고,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을 방치했다고 책임을 물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처음으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 조항이 제한적이고 소극적이나마 만들어졌다. 응급의료법을 개정한 것인데, 심장마비 등 응급환자를 발견했을 때 혹시 뒤탈을 우려해 응급처치를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면책범위를 확대했다.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일반인이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도할 수 있도록 권유하는 셈이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소화기처럼 이후 공공장소에는 심장소생 전기충격기가 사용설명서와 함께 비치돼 있다.
구조의무 법적강제는 시기상조
주변이 비정해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들이 늘어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모두가 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적극적으로 제정하자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요즘 우리의 상황이라면 얼마나 많은 범법자를 만들지 알 수 없다는 점만 감안해도 그렇다.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법으로 구체화 하는 범위는 최소화 하는 게 옳다. 응급처치의 경우처럼 착한 사람에게 면책범위를 넓혀주는 경우들을 하나씩 확대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유럽의 경우에도 일반적 구조의무를 법으로 강요하는 제도들은 그러한 경우들이 일반화 한 이후에야 자연스럽게 시행돼오고 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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