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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사명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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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사명의 다른 이름

입력
2011.02.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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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학생들과 함께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를 방문했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일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기준으로 숙소와 경비를 모두 계산했는데, 기상 악화로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그만 연착되어 버린 것이었다.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신용카드는 되지 않으니 어쩌나, 당장 함께 간 학생들이 끼니를 굶는 일까지 생기고야 말았다.

이슬람 국가의 한국 '선교사'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하나, 계속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혹 이곳에 연줄이 닿는 사람이 있나 없나 알아보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게 통화하기를 수 차례, 다행히 지인 중 한 명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연락처 하나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도 덧붙여 보내왔다. '한데, 그 분이 선교사라서 좀 조심해야 할 거야.'

당시엔 그 말의 무게에 별 다른 염두를 두지 않고 전화부터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하룻밤 지낼 수 있는 숙소와 라면이 절실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통화가 되자마자 아무개 선교사님 맞으시죠, 누구누구 소개로 전화했는데요, 하며 빠르게 묻고 또 물었다. 한데 내 기대와는 달리 전화기 저쪽에선 대뜸 나를 제지하는 말부터 흘러나왔다.

-저기요, 말을 좀 가려서 해주시겠습니까? 말을 신중하게 해주세요.

처음에 나는, 내가 전화를 잘못 건 것으로 착각해 아무개 선교사님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좀 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해왔다.

-단어를, 단어를 좀 신중하게 말해달라고요. 이곳 전화는 안전하지 않다고요.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이곳이 이슬람 국가이고, 지인이 말한 '조심하라'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문제는 '선교사'란 단어에 있다는 것, 유선전화는 수시로 감청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난 선교사는, 그러나 전화상의 목소리와는 달리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숙소와 식사 문제도 단박에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선교사'는 '선생님'으로, '목사'는 '사장님'으로, '교회'는 '회사'로 통칭되는 암호 체계를 일러주었다. 그는 우리들 앞에서 신앙의 자유와, 몇 번의 강제 추방과 신분 세탁을 거치면서도 계속 선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그럴수록 더 단단해지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간 학생들도 조금은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앙의 자유를 탄압하고, 불법 도ㆍ감청을 일삼는 나라의 현실이 어쩐지 폭력적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나와 학생들의 생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서게 된 것은 한국에 도착해 학교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부당해 보이는 국가의 간섭에 대해서, 다른 관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나라의 오랜 문화를 생각하고,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혼란이 야기될 사회를 생각해보면 그 문제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닌, 다투어 볼 만한 사안이었다. 더구나 우리가 보름 남짓 돌아본 나라는 경건한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깃발 꽂는 데 능한 한국인

그런 나라에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을 연 것도 한국인이고, 듣도 보도 못한 '룸살롱' 간판을 내건 것도 한국인이라는 가이드의 말도 떠올랐다. 가이드는 '한국 사람들은 깃발을 꽂는 것'에 능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지금도 종교의 자유에 대해선 다른 입장을 갖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깃발을 꽂는 식이라면, 군사 작전을 펼치듯 감행되는 것이라면,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개가 아닌 것 같다. 과거에 우리 또한 그런 '손님'들에 의한 폐해를 경험한 적 있다. 때론 사명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 오랜 뒤의 일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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