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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삶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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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삶의 쉼표

입력
2011.02.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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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KBS '명작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음악과 미술 분야 명작의 숨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접근해서 일반인들에게 친근함을 유도하는 문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다채롭게 구성됐다. 물론 다소 흥미 위주라거나 준비가 안 된 출연진들로 인해 본질과 다르게 다루어지는 탓에 불편해하는 전공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모처럼 주말 황금시간에 편성된 공중파 예술프로그램이 잘 자리 잡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예술인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명작스캔들'을 보며 주말 저녁을 즐기다 보니 문득 박인건 전 경기도 문화의 전당 사장님이 강조하시던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쉼표를 누리자"는 말씀이 떠올랐다. 음악에 쉼표가 있고 그림에 여백이 있듯 인생의 쉼표와 여백을 문화 활동을 통해 찾자는 것이었다. 점심 한끼를 햄버거로 때우고 차비를 아낀 돈으로 티켓을 사서 공연을 통해 풍요를 느끼며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이셨던 기억이 있다.

말씀에 공감은 하면서도 지친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먼 이야기로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클래식 강좌를 진행하며 삶의 쉼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여백 없이 살았구나 싶어 반성이 되었다.

송년모임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보다 다 같이 문화특강을 들으며 지식도 얻고 공감대도 형성하고 싶다는 한 최고경영자과정 동기 회장님 말씀에 의미 없이 지나간 수많은 송년회들이 머리를 스쳤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점심특강을 신청해 들었던 공무원들이나, 혹한의 추위에도 예술의전당 저녁강의에 오기를 마다 않는 다양한 계층의 수강생들도 만났다. 회사와 도서관에서 달려오시는 분들, 다정하게 같이 듣는 부부, 삶의 향기가 느껴지는 중년의 부인들을 보면서 인생만큼은 멋진 삶을 사는 그분들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동에 일이 있어 갔다가 잠시 짬이 났다.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해 아쉬웠던 샤갈전에 들렸다. 샤갈의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를 볼 기회가 다시 있을까 싶어 그 곳부터 찾았다. 길이가 8m에 달하는 샤갈의 대작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와 음악, 무용, 문학, 연극을 주제로 한 4개의 대형 패널화는 샤갈의 과거와 그 당시의 경험과 화풍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당시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 미술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며 절대주의 풍의 화가 말레비치와 갈등을 겪다 결국 학교를 사퇴한 후였다. 모스크바로 돌아와 있던 중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로 쓰일 대규모 작품을 의뢰 받았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창작열을 불태웠다고 한다.

연주하고 공연하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그림에서 리듬과 선율이 느껴졌다. 위대한 연주가들의 소리에서는 색채가 보이는데 정작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그림에서는 음악이 들렸다.

러시아 태생 유대인으로 혁명과 갈등의 시기를 보낸 샤갈의 당시 심정은 복잡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샤갈은 이 작품으로 예술혼을 불사르며 그 실타래를 풀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내한했던 주빈메타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휴가가 따로 필요 없어요. 브루크너의 아다지오 악장이 내게는 쉬는 시간입니다." 예술 속에서 삶의 안식을 얻은 예술가들, 그리고 예술로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삶의 쉼표를 찍어갈 지 생각해본다.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 ·국민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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