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수사 장기화·여론 부담에 영장 재청구 포기 우회적 지시남 前지검장 거부에 교체 공언… 사실상의 '외압' 행사… 檢술렁특수수사 방식 변화 주문싸고 알력 다시 불거질 수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간부들 앞에서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이던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의 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한 것으로 17일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검찰은 한화그룹 재무담당 최고책임자를 지낸 홍동옥(62) 여천NCC 사장에 대해 지난해 12월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검찰이 홍씨의 구속에 집착한 이유는 그가 그룹 비자금을 관리해왔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재무 담당자를 구속해 수사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은 특수수사의 매뉴얼"이라고 말했다. 영장이 기각됐지만 수사팀은 홍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차 청구하기로 결정하고 추가 물증 확보에 매진했다.
문제는 수사가 장기화되고 홍씨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여론이 매우 안 좋았다는 데 있었다. 지난해 8월 시작된 한화그룹 수사는 그 즈음 벌써 넉 달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장관은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을 감안, 서부지검에 홍씨에 대한 영장 재청구 포기와 불구속 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 전 지검장이 영장 재청구 의지를 밝히자, 이 장관이 간부들 앞에서 그의 교체를 공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 전 지검장이 지휘한 수사팀은 실제로 50여 일 후 홍씨에 대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결과적으로는 서부지검이 재차 홍씨에 대해 청구한 영장도 기각되면서 수사팀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법무장관이 '전투 중인 장수의 교체'를 언급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는 게 검찰 내부의 정서다. 수사 검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대형수사를 원치 않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의도대로 이 장관이 끌려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이달 초 있었던 고검장급 인사를 앞두고 인사 대상도 아닌 남 전 지검장의 교체설이 계속 흘러나왔고, 남 전 지검장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재경 지검의 한 특수부 검사는 "윗선에서 수사팀을 적극 지원해 주고 외풍을 막아줘야 수사에 탄력이 붙는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대형수사에 착수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장관이 남 전 지검장 교체 언급은 물론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는 등 수사에 부적절하게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자 일선 검사들은 당혹해 했다. 대검 관계자는 "이 장관의 수사 개입이 사실이라면 구체적 사건에 대해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거치지 않고 일선 검찰청에 직접 지시를 한 것으로 그 자체가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선 이 장관이 여당 의원의 측근이 연루된 공직선거법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도 일선 검찰청에 특정 주문을 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검찰 내부에서 특수수사 방식의 변화를 주문하는 고위층의 지적이 잇따르자 일선 검사들이 자조 섞인 불만까지 내뱉고 있는 분위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화그룹 수사가 끝나고 남 전 지검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박용석 대검 차장은 법무연수원 소식지 기고문을 통해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고 말했고,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도 취임사에서 "시대가 변하면 수사 기법과 방식도 진화해야 한다"고 수사방식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품격과 절제를 지키며 수사해야 한다는 말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며 "마치 남 전 지검장의 수사방식을 비판하고 이 장관의 의중을 반영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