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화법 긴 파장"농담도 많은 생각하고 한다" "대선주자가 무책임해 보여"
정치는 '말'로 한다. 그래서 대다수 정치인은 말을 길게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예외다. 그는 '답답하다''유력 대선주자로서 무책임해 보인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말을 극도로 아낀다. 그가 어쩌다 입을 열어도 장광설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박 전 대표는 논리 전개를 길게 하기 보다는 짧게 압축해 메시지를 전달하곤 한다. 그래서 '단답형' '단시(短詩)형'이란 얘기도 나온다.
16일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발언도 그랬다. 그는 과학벨트 입지 선정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약속하신 것인데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대통령이 지시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공약이니 대통령이 책임질 것'이란 단순한 논리로 정리한 것이다. 과학벨트를 어떤 기준에 따라 선정해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 논리 전개는 없다.
박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논란에 대해서도 "대선공약으로 약속한 것이다. 정부가 발표할 것이다"고 간략히 답변했다. 그는 세종시 논란 때처럼 주요 국책 사업에서는 '약속'과 '신뢰'를 첫째 기준으로 내세운다.
박 전 대표 특유의 화법이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지원유세 때였다. 그는 정치인이 대중연설에서 흔히 쓰는 길고 화려한 수사를 배제했다. 대신 그는 "배도 한 쪽으로 기울면 침몰한다"(거여 견제론) "말썽꾼 자식이 마음을 고쳐 먹으면 더 효도한다"(탄핵 등에 대한 반성) 등 간결한 말로 대중의 마음을 건드렸다. 이후에도 박 전 대표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살아 돌아오라" "오만의 극치" 등 '하이쿠(俳句 ㆍ일본의 17음 짜리 짧은 시)'를 연상시키는 화법을 썼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파장은 매우 컸다.
박 전 대표의 짧은 말은 툭 던지는 게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친박계 현기환 의원은 "박 전 대표는 농담 한 마디를 하기 전에도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며 "청와대에 있을 때 정치인의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체험한 뒤 생긴 습성"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이 너무 짧으면 자칫 내용이 없어 보이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선주자에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기보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현안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면 굳이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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