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신사'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숙제는?8개월간 수장·공백 "조직 재정비 적임자"'은둔의 CEO' 별명 리더십에 우려 목소리도
"흐트러진 재계의 무게중심을 바로 세워라."
허창수(63) GS그룹 회장이 제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16일 재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조직 재정비를 통한 전경련의 재계 구심점 역할 회복'을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로 꼽았다.
1961년 창립,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은 지난해 5월 조석래 회장이 담낭종양 수술을 받고 7월 건강을 이유로 사퇴할 뜻을 내비친 이후 8개월 가량 수장이 없는 상태를 맞았다. 그 과정에서 G20(주요20개국) 정상 회의와 비즈니스 서밋 등 국가적 행사 때마다 재계는 '대표 얼굴'없이 행사를 치러야 했고, 위상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더구나 현 정부는 대ㆍ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요구하고 있고,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일부 기업의 '지나친 이익 추구'를 지적하며 기업들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전경련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도 재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전경련은 LG그룹, 동부그룹의 이탈로 조직력도 약해졌다. 구본무 LG회장은 1999년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 빅딜 과정에서 전경련 주도로 반도체 분야를 현대그룹에 넘겼다는 앙금 때문에 전경련 회의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2007년 전경련 운영에 불만을 드러내며 부회장 자리를 내던졌다.
허 회장은 인품으로 보나, 재계인사들과의 개인적 인연으로 보나 이처럼 꼬인 실타래를 풀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 회장은 무대의 중심에 서기 보다는 뒤에서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챙기는 스타일이다.
LG그룹(구씨)과 GS그룹(허씨)이 2004년 계열분리를 할 때까지 57년 가까이 한 지붕 아래 있는 동안 구씨 가문이 주로 사업 확장과 공장 건설 등 바깥일을 맡아 사업을 키웠다면, 허씨 가문은 재무와 회계 등 안살림을 도맡았다. 허 회장 역시 줄곧 관리파트를 맡으며 안살림을 챙겨왔다. GS그룹 관계자는 "소탈한 성격에 자신을 겉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한다"고 설명했다.
LG와 GS의 옛 인연을 이유로 구 회장이 허 회장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전경련을 다시 찾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재계에서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허 회장의 조부인 '효주' 허만정 공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열 때 종자돈을 대는 등 삼성과도 인연이 깊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999년 10월 전경련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재계 서열 10위 이내의 그룹 오너가 회장을 맡은 적이 없었던 전경련은 재계 7위 GS그룹을 이끄는 허 회장이 새 수장으로 오면서 재계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허 회장 추대를 위한 모임에 참석한 11명의 재계 원로 및 오너들이 허 회장을 재계의 구심점으로 만장일치로 추대했다"며 "허 회장이 전경련회장을 맡으면서 재계가 결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물론 한편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미디어나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아 한때 '은둔의 CEO'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는 점에서 허 회장이 재계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정부 및 대중소기업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리더십을 통해 전경련의 위상을 찾을지 여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허 회장 리더십 검증의 첫 시험대는 자신이 몸담았던 LG의 구본무 회장을 전경련에 복귀시킬 수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허창수 회장은 2004년 GS그룹 회장 취임… 첨단장비 활용 '얼리 어답터'
고(故) 구인회 LG 창업자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경남 진주 태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1977년 LG그룹 기조실에 입사해 LG상사, LG산전, LG전선 등 계열분리 전 LG그룹 내 계열사들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1995년 구-허씨 양가의 창업세대 경영진이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허준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다.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할되면서 지주회사인 GS홀딩스 회장으로 취임했다.
훤칠한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재계의 신사'라 불린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고 지하철 한 두 코스는 수행 비서 없이 걷는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운동을 빠뜨리지 않을 만큼 건강 관리도 철저하다. 오페라를 즐겨보고 스마트 폰, 아이패드를 비롯해 첨단 장비 활용에도 열심인 '얼리 어답터'로 알려졌다. 특히 축구 사랑은 남다르다.
1998년 안양 LG시절(지금의 서울 FC)부터 14년 동안 축구단 구단주를 맡고 있고, 해마다 축구 선수단의 전지 훈련지를 방문해 응원하는 등 축구 관련 이벤트만큼은 빠짐 없이 챙긴다. 지난해 프로축구 챔피언 결정전 때도 경기장을 찾았다. GS칼텍스 허동수 회장과는 사촌형제지간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