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수도권 계급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수도권 계급표

입력
2011.02.17 12:02
0 0

"아빠, 우린 평민이래요."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풀 죽은 어조로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한다면 약간 긴장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온라인 게임 얘긴가, 하고 오해하지 마시길. 십중팔구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수도권 계급표'를 보고 하는 말일 거다. 제목부터가 심상찮은 이 계급표는 수도권 거주자들을 지역에 따라 단호하게 8계급으로 나눈다. 최고 계급은 황족이고 그 밑으로 왕족 귀족이 있으며,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는 장애물 아래 중인과 평민, 노비가 있다. 최하 계급은, '가축'이다.

■ 한 인터넷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려진 이 단도직입적인 현대판 계급서열표에서 계급 분류의 기준은 오직 하나, 거주지의 땅값이다. 사회적 위신이나 권력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사회 계급을 결정 짓는 핵심 변수는 역시 부(富)이며, 우리 국민의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평균 75%를 넘으니 보유 부동산가치가 곧 계급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황족은 평당 3,000만원 이상인 강남구 거주자다. 이어 2,200만원 이상인 서초ㆍ송파ㆍ용산구와 과천 거주자가 왕족, 강동ㆍ양천ㆍ광진구 및 성남시 분당구, 종로ㆍ마포구 거주자들이 중앙귀족 및 지방호족을 형성한다.

■ 도봉구에 사는 지인의 과년한 딸이 전세라도 좋으니 강남으로 이사 가자고 조른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던 적이 있다. 도봉구는 구리ㆍ하남시 등과 함께 1,100만원 미만의 노비 신분이라니, 결혼 적령기에 들어간 딸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 최하 계급인 '가축'들이 사는 1,000만원 미만의 거주지는 '그 외 잡 시&군&구'로 표시돼 있다. 추구하는 가치나 생활 태도 같은 요소도 삶의 질을 좌우하지 않느냐는 소리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건 개나 물어가라는 투다. 조악한 계급표 하나가 애써 외면했던 삶의 현주소를 오롯이 드러낸 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 노동운동가 손낙구 씨는 2008년에 낸 라는 책에서 1가구가 2주택 이상 소유한 최고 가구부터 옥탑방에 세 들어 사는 최하 가구까지 6계급을 분류해 제시했다. 손씨의 분류가 부동산 소유 여부 등에 따라 계급을 나눈 것이라면, 이번 계급표는 거주 지역별 분류가 된 셈이다. 서울시장을 뽑을 때, 철 지난 선거포스터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강남ㆍ북 균형개발' 공약이 새삼 떠오른다. 17일 주택업계가 뽑은 집값 지니계수는 2001년 0.188에서 2010년 0.201로 늘어 서울의 구별 아파트가격 불균형도는 오히려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