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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스핑크스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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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스핑크스는 어디로 가나

입력
2011.02.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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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 여인의 가슴을 가진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상징이다. 수천 년 동안 피라미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왕을 지켜온 기개는 언제라도 살아 움직일 듯 용맹하다. 그러나 몇 년 전 카이로를 방문했을 때 직접 본 스핑크스는 찬란한 문명의 위용은 잃어버린 채 잔돈푼을 졸라대는 아이처럼, 또는 힘없이 그늘에 앉아있는 이집트 노인처럼 가난하고 처량한 모습이었다.

'탈식민지 자주' 앞장선 이집트

이집트라는 나라는 스핑크스처럼 오묘하고 복잡하다. 심오한 비밀을 간직한 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집트는 인류 문명의 근원지이다. 피라미드 속에는 아직도 파라오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한편 이집트는 아랍 지역의 맹주로서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래 온갖 풍파 속에서도 중동지역 질서를 지켜온 거대한 버팀목이었다. 오랫동안 이집트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 군사원조의 최대 수혜국이었고, 이번 민주화 시위 이후 미국이 경제원조를 대폭 증액할 것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 전략적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국가라는 또 다른 면을 갖고 있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세계 무대에서 아프리카를 대변해 왔고,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부트로스 갈리와 같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인물을 여럿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이집트는 일찍이 탈식민지 자주화를 외친 제3세계 국가의 기수이다.

거기에 낫세르 대통령이 있다. 낫세르는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군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1956년 영국이 관리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다. 이로써 신식민지 통치 방식으로 이집트를 지배하려던 영국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낫세르 대통령의 탈식민지 자주화 움직임은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제3세계 수많은 젊은 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수많은 군부 쿠데타가 이어졌다.

2011년 2월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민주화 물결은 무바라크 정부의 30년 철권통치를 종식시켰다. 그 거대한 물결은 수천 년의 먼지를 털고 웅비하는 스핑크스의 포효였다. 이제 그 파도는 예멘 알제리 요르단 등 아랍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를 인터넷이나 요즈음 유행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힘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큰 역사적, 사회적 흐름이 존재한다. 탈식민지와 비동맹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우겠다던 낫세르 대통령의 기개도,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미국과 이스라엘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사다트 대통령의 지략도, 피폐한 경제에 시달려온 이집트 국민이 보다 나은 생활을 누리게 하는데 실패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직도 이집트 전체 인구의 40%는 하루 2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30년 독재정권을 유지해온 무바라크 대통령 일가와 거기에 편승한 일부 권력층들의 부정부패,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은 낫세르 대통령이 주창한 탈식민지 자주화 운동의 이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이집트 국민들이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 것이 타흐리르 광장의 민주화 시위이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 좇아야

분노한 스핑크스가 어디로 향해 갈지는 모른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 이후 의회를 해산하고 과도내각을 구성한 군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빈곤층을 대상으로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정치적 목적은 무엇일까? 타흐리르 광장의 항거를 이끈 인터넷 사이버 활동가들은 책임 있는 정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들, 일거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실업자들은 인내를 갖고 기다려 줄 것인가?

이같이 불확실한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집트 국민들의 뜻이 정치 과정에 반영되는 것이며, 국제사회는 권력 이양 과정을 주목하며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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