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이나 주말이면 책 기사가 실린다. 그것도 한두 건이 아니라 몇 페이지에 달하는 적잖은 분량이다. 책도 시장에 유통되는 상품의 하나에 불과한데 신문이 그렇게 많은 지면을 내주는 것은 책이 갖는 공공성 때문이다.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으며, 다른 상품과는 다르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동의가 깔려있는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도서관을 세워 책을 공짜로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출판계가 요즘 반값 도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런 저런 편법을 동원해 정가의 절반 가격에 파는 오픈마켓 등의 할인 공세가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리자 출판사들과 주요 온ㆍ오프라인 서점들이 출간 후 18개월이 지난 구간(舊刊) 도서의 할인율을 최대 30%로 제한하자고 나선 것이다. 430여개 출판사가 회원인 한국출판인회의와 교보문고 등 8개 대형 온ㆍ오프라인 서점이 지난 1일 이런 내용의 사회협약을 체결하고 내달 1일부터 이를 시행할 계획이다.
반값 할인이 책을 사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크게 보면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이 보급된 지난 10여 년간 온라인서점의 할인 공세에 동네서점이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1996년 5,300여 개였던 서점 수는 2009년에는 2,800여 개 정도로 줄었다. 이제는 책을 사려면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책방을 찾기 어려워 차를 타고 가거나, 책을 보지 못한 채 인터넷에 소개된 것만 보고 주문을 해야 한다.
그 동안은 온라인 서점의 할인과 당일 배송에 밀려 소형서점이 사라졌는데, 이제는 오픈 마켓 등의 반값 할인 공세에 중형서점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할인할 여력이 없는 영세 서점들이 도태되는 상황은 동네 구멍가게들이 자본이 많은 대형 유통업체에 밀려 사라진 것과 똑같다.
할인이 일반화되면 출판사들도 할인을 고려해 책값을 높게 메기게 된다. 결국 거품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 독자들이 신간이 아니라 할인이 되는 구간을 많이 찾게 돼 신간 발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큰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순위마저 영향을 받아 왜곡되고 있다고 출판 관계자들은 말한다.
출판계가 이런 처지에 몰린 것은 스스로 도서정가제를 무시해 초래한 자승자박의 측면도 없지 않다. 출판사들 가운데는 일반 서점에는 정가의 70%에 공급하는 반면, 온라인 서점에는 물량이 많다는 이유로 50%에 책을 공급해 할인의 여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오픈마켓 등이 절반 가격으로 할인하는 것에도 뭔가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출판계가 이제나마 자정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반값 도서를 주도한 오픈마켓은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협약에서 빠져 있고, 협약을 위반한 업체를 제재하기도 어려워 실효성이 의문시되기도 한다.
반값 할인 뒤에는 업계의 여러 복잡한 사정이 깔려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보아도 이것은 지속 가능한 비지니스 모델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 파일 다운로드가 음반 회사들을 위축시킨 것처럼, 과도한 할인은 출판사들에 타격을 가해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다. 책의 공공성을 고려한 도서정가제와 업계 일부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자유가격제가 뒤섞여 있는 현행 도서 가격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남경욱 문화부 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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