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직업이 없기 때문에 카드를 발급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30년 동안 무대에 선 결과가 이건가 싶어 연극을 그만둘 마음을 먹었다. 예술인들은 항상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17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취임을 계기로 열린 2011년 문화예술분야 정책 현장업무보고에서 유명 연극배우 박정자(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씨는 20년 전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했을 때 겪었던 일을 소개하며 자괴감을 토로했다.
이 자리에서는 예술인들의 절박한 사정이 쏟아졌다. 최근 생활고를 겪다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건이 있었던 터라 예술인들에 대한 기초적 복지 제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정자씨는 "예술 전공자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며 "이들이 사회복지사 같은 '문화복지사' 형태로 방과후학교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제안했다.
"최고은씨 사건 이후 패닉 상태"라는 시인 신용목씨는 "10년 전 보험에 가입하려 했더니 시인은 '위험직종군'으로 분류돼 보험료가 비싸다고 하더라. 그래서 차라리 '백수'로 분류해 달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씨는 또 "4대강 주변을 공공디자인 시범도시로 조성한다고 하는데 논쟁 중인 사업에 예술인을 동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뮤지컬 감독 박칼린(호원대 교수)씨는 "한국 뮤지컬 배우와 기술진은 세계적 수준에 다가가고 있지만 크리에이티브(창작력)는 걸음마 신세"라며 "극작, 안무, 연출 등 훌륭한 창작자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외국 작품을 수입해 무대에 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병국 장관은 "10년 전 초선 의원 때나 지금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비슷해 (사정이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아) 자괴감을 느낀다"며 "의견들을 잘 검토해 사업 우선순위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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