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명수 칼럼] 박완서, 거목 옆의 거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명수 칼럼] 박완서, 거목 옆의 거목

입력
2011.02.17 12:07
0 0

지난 달 별세하신 박완서 선생님 생각에서 못 벗어난 채 2월을 보내는 중에 TV에서 김수환 추기경 2주기(週忌)특집을 보았다. 달동네를 찾아 아기를 안고 활짝 웃는 추기경님을 보며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박완서 선생님이 지금 TV를 보셨다면 같은 심정일 텐데 라고 생각하자 상실감으로 목이 메었다.

2008년 5월 5일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고, 2011년 1월 22일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3년이 채 안 되는 동안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했던 세 분을 잃었다. 그분들이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사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고,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들의 부재가 슬프다.

김수환 박경리 박완서

박경리 선생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부재를 누구보다 슬퍼한 분이 박완서 선생님이었다. "이 세상 어느 한 쪽이 텅 빈 것 같다"고 하셨고, 두 분이 마지막 투병을 하시는 동안 문병객 맞기가 힘겨우실 것이라는 염려로 더 찾아 뵙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셨다. 자기 자신의 부재에 대해서 우리가 이처럼 슬퍼할 것이라는 사실을 선생님은 짐작이나 하셨을까.

박경리 선생님과 선생님은 5살 차이였는데, 선생님은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박경리 선생님을 모셨다. 박경리 선생님을 한국 문단의 가장 울창한 거목이라 생각하셨고, 거목의 그늘을 찾아 자주 원주에 가셨다. 가톨릭 신자였던 선생님의 추기경 사랑은 더욱 극진했다. 추기경님을 존경하셨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훌륭한 분들을 가까이 뵙고 섬기는 것을 선생님은 행복해하셨다.

선생님이 떠나신 후 우리는 그분 또한 거목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선생님은 다른 분들을 섬길 뿐 자신이 거목임은 잊으셨고, 우리가 자신을 섬길 수 있는 틈조차 안 주셨다. 박경리 선생님의 장례위원장을 맡아 문인장으로 치르면서 "이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오시니 국장(國葬)이 따로 없다"고 흥분하던 선생님은 자신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라고 단단히 유언하셨다. "문인들은 가난하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것까지 당부해 놓으셨다.

1988년 26세의 외아들을 잃으셨을 때 그 누구도 만나지 않던 선생님은 "원주에 모시고 가겠다"는 나의 한마디에 밖으로 나오셨다. 초등학생 아들을 잃은 적이 있는 박경리 선생님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후배를 위해 밤새 곰국을 고아 놓고 기다리셨다. 두 분은 마당에서 서로를 껴안고 우셨다. "써야 돼. 써야 돼. 글을 써야만 이겨낼 수 있어."라고 박경리 선생님은 후배의 등을 두드리며 절규하셨다. 박완서 선생님은 곰국을 안주 삼아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겨우 겨우 한마디씩 하셨다.

선생님은 글 쓰기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다. 고 선생님은 글에서 밝히고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장례에서는 '어머니'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라고 이근배 시인은 추모시를 바쳤다. 박완서 선생님에겐 '어머니' 보다 '엄마'가 어울린다. 차가우면서 따뜻하고, 깍쟁이처럼 따지다가도 우주의 품으로 받아주고, 해맑은 웃음과 목소리를 가진 엄마…. 그는 전쟁과 굶주림과 동족상잔과 개발독재와 민주화의 시대를 살아내며 글로 증언해 온 '우리시대의 엄마'다.

우리 시대의 '엄마'

추기경님과 박경리 박완서 선생님 모두 기차를 타고 여정에 오르셨다는 생각이 든다(비행기나 우주선이나 배보다는 기차가 더 어울린다.). 우리도 언젠가 그 기차를 탈 것이다. 차창 밖으로 해가 뜨고, 꽃과 신록이 피어나고, 바람이 불고, 비와 눈이 내리고, 별과 달이 뜰 것이다.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살구꽃도 피고, 다닥다닥 달린 살구가 노랗게 익어갔으면 좋겠다.

장명수 본사 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