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임시국회의 쟁점으로 떠오른 이슬람채권법을 놓고 기독교계가 반대 운동에 나섰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련)가 앞장섰다. 대형 교회들도 합류할 예정이다.
길자연 한기총 대표회장을 비롯한 교단 대표들은 17일 안상수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나 "이슬람채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찬성한 의원들을 상대로 낙선 운동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한기총은 공동회장인 홍재철 목사를 위원장으로 한 이슬람채권법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홍 목사 등 한기총 대표들은 15일에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 대표를 만나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한장련도 15일 회원 교단 총회장들이 모여 이슬람채권법 저지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이슬람채권법은 기획재정부가 외자 유치 차원에서 추진하는 법안으로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에 과세특례를 적용해 양도세 부가세 취득세 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를 통과했으나 재정위 전체회의에서 보류됐다. 그때도 개신교계의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
개신교계는 이 법안이 지나친 특혜이고, 한국의 금융 주권을 해칠 수 있으며, 이슬람 과격파가 한국에 진출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슬람채권의 발행을 결정하는 이슬람율법위원회는 채권 운용이 율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어느 나라에서든 바로 회수한다.
개신교계는 종교적 이유로 이슬람채권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슬람의 확장을 경계하는 거부감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한장련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슬람채권법은 전 세계를 이슬람 제국으로 만들려는 경제 지하드(성전)"라고 규정했다. 또 수익의 2.5%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송금 내역을 파기하도록 돼 있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슬람채권의 돈이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 자금 등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개신교계는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이 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 관계자는 "이 법안이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 따른 자금 조달책이라고 의심하는 민주당의 입장이 알려지면서 'MB도 별 수 없이 장사꾼일 뿐'이라는 성토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이러한 태도가 종교 관용과는 거리가 먼 편협함이라고 비판하는 개신교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인 정용섭 목사는 "경제 문제인 이슬람채권법을 교회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월권이며, 이 문제로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기독교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종교를 적대시하는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가 이번 사태의 뿌리"라고 지적하고, "이는 종교 다원주의에 따라 다른 종교도 존중하는 세계 교회의 주류와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자세"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이슬람채권법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니며, 오히려 다른 외화채권과 형평을 맞추려면 각종 세금 면제가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슬람채권은 이 율법에 따른다. 때문에 건물이나 설비 등 실물 자산에 투자해서 나온 수익을 이자 대신 배당한다. 이 과정에서 매매나 임대 등 각종 거래에 이런저런 세금을 떼면 이자소득세를 면제해 주는 일반 외화 표시 채권보다 금리가 크게 높아져 불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채권 발행 조건을 똑같이 맞추려면 각종 세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이슬람채권법의 면세 혜택이 너무 크다면 줄이고, 종교 색채도 빼서 이번 임시국회에 반드시 통과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개신교계가 반발하고 민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반대가 많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이슬람은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 국내 주요 종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등 종교간 대화 기구에 끼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계의 반 이슬람 정서가 너무 커서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KCRP가 지난해 한국이슬람교중앙회와 공동행사를 하는 등 교류가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오미환기자 mh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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