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신비 인하 논란이 뜨겁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그 동안 통신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 하락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강하다”며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시장지배적 통신사업자에 대한 가격 인하 방식을 재검토하는 등 가격경쟁 촉진 방안을 연구해 달라”고 공개 언급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에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해 이동통신 업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동통신 업체들은 한결같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매년 수 백 억원 이상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에 순응해 왔는데, 또 다시 물가 안정을 이유로 요금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통신비 20% 인하’ 공약 덕분(?)에 지난 3년간 계속해서 요금 인하 압박을 받아온 이동통신 업계에선 억울하다며 볼멘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선 이동통신 업계의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매년 막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인 국내 이통사의 경영실적 추이가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이동통신 업계를 대표하고 나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와 소비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들로부터 각각 양측의 입장을 들어본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과당 요금 규제하라
"통신규제당국은 통신요금의 현상유지를 꾀해 왔고 심지어 독과점 규제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사들의 회계자료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는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실질) 규모는 200만원을 넘었다.
이 가운데 통신서비스에 지출하는 비용은 약 14만1,300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에서 7%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정도의 가계소비지출 비중은 식료품비(12.9%)나 교육비(13%) 보다는 낮지만, 의류비(5.8%)나 보건비(6.9%) 보다는 높고 주거비(9.9%)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모든 가정이 먹고 자는 일 다음으로 휴대폰 비용부담을 안고 사는 셈이다.
당연히 이동통신사업자들의 매출액이나 영업이익도 증가했다. 지난해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매출 총액은 총 32조에 달해 2008년에 비해 무려 8조 가까이 늘었다. 영업이익 또한 SK텔레콤은 예년 수준인 2조원 이상을 달성했지만 KT와 LG 유플러스는 1조1,000억원과 6,000억 이상으로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KT와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 수준은 모두 2008년도의 거의 두 배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SK텔레콤의 2010년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16.2%이며 KT는 10%를 넘었고, 가장 어렵다는 LG유플러스도 7.7%에 이른다. 2009년까지 국내 대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6.5% 내외를 맴돌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실로 환상적인 수치다. 그런데도 통신사업자들은 차세대 서비스 투자부담 때문에 요금을 내릴 수 없다고 한다.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다. 결국 수익을 더 늘려야 하기 때문에 값을 내릴 수 없다는 뜻인데, 그것도 항변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실적이 가능했을까? 이동통신요금이 경쟁요금 수준이 아니라 독과점요금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시장은 처음부터 주파수를 할당 받은 사업자에게만 시장진입을 허용하는 원천적 과점시장이다. 더구나 통신과 같은 장치산업은 초기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그 이후에는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쟁 속에서는 가격이 계속해 낮아지기 마련이다. 세계적으로도 이동통신요금은 해마다 조금씩 인하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음성통화요금은 2005년 수준에서 거의 멈춰있다. 이는 결국 독과점 요금이 최소 5년 이상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통신규제당국은 통신요금문제만 나오면 요금수준은 평가할 생각도 않고 요금부과방법(요금제)만 앞에서 빼고 뒤에서 늘리는 식으로 바꿔가면서 통신요금의 현상유지를 꾀해 왔다. 심지어 독과점 규제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사들의 회계자료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고, 관련 전문가도 의아해하는 신비로운 산정방식에 따라 산출되는 원가보상률 결과치도 몇 년 뒤에나 정보공개청구에 마지못해 공개하는 정도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가 독과점 산업이라는 시각에서 통신요금문제를 보겠다고 나선 것은 뒤늦게나마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스마트폰 경우에 데이터매출액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가입자수는 작년 연말까지도 700만명 미만으로 전체 이동통신이용자(2010년11월 기준 5,062만)의 불과 14%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스마트폰 가입자들 때문에 그와 같은 놀라운 영업실적이 가능했다면 그것 역시 따져볼 일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이용자는 다른 이용자에 비해 월평균 30% 이상의 요금을 더 지불하고 있다. 현재 3개 이동통신사는 스마트폰 정액요금제 최하금액수준을 동일하게 맞춰 요금경쟁은 회피하면서 월평균매출액은 높여가고 있다. 또한 기술적으로 이미 음성과 데이터의 구분이 없어진 3세대 서비스에서 굳이 음성과 문자, 데이터통신을 구분하여 과금하는 2세대 과금체계를 정액요금제에서도 유지함으로써 음성통신 시간이 대폭 감소하고 있음에도 음성매출 감소를 방지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요금 내릴 형편 안돼
"이동통신 업체의 마케팅 비용은 일반적인 마케팅 비용과 달리 단말기 구입 부담 절감 등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을 주는 비용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통신비 인하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사실 통신비를 물가와 연동시켜 인하해야 한다는 논리에 다소 의문이 가기는 하지만, 물가 측면에서 보더라도 통신분야는 물가지수 전체 항목 중에 수년간 유일하게 하락한 분야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스마트폰 활성화에 따라 통신관련 지출이 증가세에 있기는 하지만 가계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통신비가 증가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통신서비스 요금자체가 상승해서라기 보다는 일반 휴대폰 보다 약 24만원가량 비싼 스마트폰 구입자가 증가했다는 이유가 크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5배 가량되는 사용량 증가 또한 통신비를 증가시킨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실제 휴대폰 요금 자체는 수년간 하락해 왔으며, 이동통신 업계는 최근에도 초당과금제 및 스마트폰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하면서 요금인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휴대폰 요금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하면서 통신요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요금은 그 나라의 소득 및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요금 수준이 꼭 비슷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그 비교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즉, 단일 요금 지표를 통해 한나라의 요금 수준을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요금비교 지수인 코리아인덱스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OECD 11개국 중 3~5위로 저렴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통신요금 인하 여력의 또 다른 논리로 통신사의 수익이 과다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쓰면서도 이익 규모가 너무 크다는 주장이지만, 사실 국내 통신사의 수익성은 해외 주요 통신사들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준이 아니다. 수익성은 국가간 세제차이를 배제하기 위해 세전 영업이익을 뜻하는 에비타(EBITDA) 마진으로 비교하는데, 우리나라(33.2%)는 OECD(40.2%) 평균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거니와, 2005년고 비교해 변화가 없는 OECD 평균과 달리 약 6% 포인트 하락했다.
또한, 이동통신 업체의 마케팅 비용은 일반적인 마케팅 비용과 달리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을 주는 비용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동통신 마케팅 비용은 광고비 등으로 지출되는 부분도 있지만, 소비자가 고가의 최신 단말기를 구입할 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용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따라서 통신사의 마케팅비를 통신요금 인하로 돌릴 수 있다는 주장에 앞서 단말기 구입 부담 절감 등 소비자의 지출을 낮춰주는 순기능도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덧붙여, 통신산업은 대규모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산업이다. 국내 통신사들의 투자는 고정자산 투자 비율(CAPEX)로 비교해 봤을 때, 선진국 평균인 11%와 비교해 14%로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이 지금까지 높은 수준의 통신서비스 품질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모바일 통신 사용량(트래픽)에 따라 투자의 필요성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 알카텔 루슨트에 따르면 앞으로 3년 내에 세계 모바일 트래픽이 50배 가량 증가할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 훨씬 큰 상승이 예상된다고 지적 한 바 있다.
트래픽 폭증을 대비해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최근 3년간 평균 5조7,0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나 향후 유선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주파수 확보 등을 위한 투자까지 고려한다면, 더 큰 규모의 투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요금인하로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면 해외 사업자 대비 투자를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송석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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