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법 급물살]분쟁중재원 설치로 환자 입증책임 크게 완화사고 따른 공방기간 26개월서 5개월로 줄 듯형사처벌 특례등완전 합의까진 '험로' 예상도
정부가 올 상반기 국회 통과를 목표로 제출해 현재 법사위에 올라가 있는 의료사고분쟁조정법안은 최영수ㆍ박은수ㆍ심재철 의원이 각각 발의한 관련 법안을 절충해 만든 것이다. 이 법안은 형사처벌 특례 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1988년 대한의사협회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건의 이래로 23년이나 표류해왔던 의료사고분쟁의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신속한 조정을 위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치다. 특수법인 형태로 설립되는 중재원은 의료사고감정단과 의료분쟁조정위원회로 구성된다. 감정단은 주로 의사와 변호사가 위원이 돼, 민사소송절차와 달리 피해자의 사고조사 신청에 따라 곧바로 해당 환자나 의료인을 조사하게 된다. 또 판ㆍ검사 등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는 감정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중재 판정을 하거나 의사과실이 있으면 손해액을 산정한다.
중재원 설립으로 크게 달라지는 점은 환자의 입증책임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의료지식이 전무한 환자나 가족들이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 위해 병원과 관련 기관을 일일이 찾아 다녀야 했다.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더라도 승소율이 절반에 그치는 데다, 소송기간이 2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환자나 가족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복지부는 중재원이 설립되면 환자 조정신청이 접수된 때로부터 두 달 내에 조사를 끝낸 후 3개월 내에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종전에 평균 26개월 걸리던 지루한 공방을 5개월 정도에 끝낼 수 있어 신속한 피해구제가 가능하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외국인 환자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국내 의료기술 및 교통수단 발달로 국내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늘고 있지만 의료사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게 환자 유치의 걸림돌이었다. 이런 까닭에 중재원이 가동되면 외국인 환자의 의료사고도 동일하게 조사 대상이 돼 의료 산업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복지부 판단이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형사처벌 특례조항이다. 조정법 51조에 따르면 환자가 사망하는 등 중한 상해가 아니고는, 당사자 조정이 성립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법무부 등은 적극적 진료를 보장하기 위해 이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단체들은 의료인에 대한 특혜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둘째, 입증 책임 문제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의료 특성상 의사 스스로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입증토록 하는 조항을 넣어야 환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반대 논리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의료사고는 조정 문제가 아니라 입증의 문제이기 때문에 입증 조항을 빼면 조정기구를 만들어야 봐야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앞으로 중재원이 환자와 의료인 모두를 직권으로 공평하게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입증 책임 조항을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의료인이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책임을 지지 않는 무과실 보상 문제다. 이 법안에서는 미국과 일본처럼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에 대해 의사 책임을 면하고, 해당 환자에게는 국가와 의료기관이 마련한 재원으로 손해를 보상토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의사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항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부 손건익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시민단체가 일부 쟁점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의료 사고의 고통을 경험한 많은 환자나 가족들이 제도 도입을 절실하게 원하는 만큼, 빠른 시일 안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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