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분쟁 실태는]"전문 지식 없는 환자측 불리" 지적 많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부실 또는 의료과실로 사고를 당했다는 환자들이 이용하는 대표적 구제수단은 소송이다. 1989년 전국 법원에서 88건 처리됐던 의료소송은 2009년 780건으로 급증했다. 소송 건수는 늘어난 반면, 환자 측 승소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89년 환자 측이 배상을 받은 경우는 78.6%에 이르렀지만, 2009년에는 55.9%로 낮아졌다. 수치상 소송 중 절반 이상은 배상을 받지만, 사실상 배상액은 병원 측의 책임을 거의 인정하지 않은 채 책정된 낮은 수준으로 변호사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원칙적으로 원고에게 사실관계, 인과관계 입증책임이 부과돼 있어 전문지식을 가진 병원을 상대로는 승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예로 김모씨는 아내가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돌연 뇌농양으로 사망했다. 김씨는 "아내의 사인은 뇌종양이었는데 병원이 뇌농양으로 오진해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김씨에게 돌아온 건 4쪽짜리 패소 판결문뿐이었다.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는 없고, 병원의 변론취지와 같이 뇌농양으로 사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가장 기초적인 사실확정부터 원고가 못했다는 것으로, 대다수 의료소송도 병원의 책임비율을 산정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도 못한 채 환자 측 패소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의료소송은 전문지식을 요구하고, 무엇보다 의료사고 관련 정보를 병원측이 일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특성도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소송은 원고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법원도 이 점을 감안, 환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판례를 내놓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96년 대법원은 전신마비를 초래한 의료사고 소송에서 "환자가 수술 중 전신마비 증세에 이른 경우 피해자는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을 입증하고, 병원 측이 의료상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사고가 생겼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판례를 확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환자 측의 입증 책임이 무겁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20년 넘게 의료소송을 대리한 신현호 변호사는 "환자 측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판례가 간혹 있기는 하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며 "의료소송은 환자 입장에선 사실확정부터 어렵고, 인과관계 입증은 더 불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사고 소송은 현장검증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의료소송은 재연도 불가능하다"며 "이 점을 감안해 환자 측엔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정도의 입증책임만 부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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