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고교생 셋이 주인공이다. 일진이 등장하고 학교 폭력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10대들이 주요 인물인 영화에선 빠지지 않는 자살이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주요 연료다. 뻔하고 뻔한 학원물로 치부할 수 있겠다. 진부한 이야기를 왜 또 영화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만도 하다.
그렇고 그런 내용을 다루는 듯한 영화 ‘파수꾼’은 남다르다. 한국 영화계의 여러 범작들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커 보일 정도로 두드러진다. 아마도 올해 한국 영화계의 놀라운 발견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별스럽지 않은 외관에 특출한 내면을 지닌 이 영화, 영화광을 자처하는 관객이라면 눈독 들여야 한다.
‘파수꾼’은 학교라는 좁은 공간과 평범한 세 친구의 관계를 통해 일상에도 어김없이 작용하는 권력의 작동 원리를 묘파한다. 권력을 옹립하고 유지하는 폭력이 또 어떻게 친밀한(또는 친밀하다고 믿는) 관계를 갉아먹게 되고 권력의 몰락을 이끌게 되는지도 세밀히 그려낸다. 권력과 폭력에 대해 그린다고 해서 지나치게 진지하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미스터리 극의 형식을 띠며 관객의 마음을 잡아맨다.
영화는 한 소년의 죽음에 대한 의문부호로 시작한다. 고교생 기태(이제훈)가 어느 날 스스로 생을 버리자 그의 아버지(조성하)는 뒤늦게 아들의 교우 관계와 학교 생활을 파고든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듯했던 희준(박정민)은 기태가 죽기 전 전학을 갔고, 기태의 죽마고우 동윤(서준영)은 기태의 장례식장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기태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부른 이유를 찾아 헤매고, 영화는 희준과 동윤의 회상을 통해 기태를 죽음으로 몬 일련의 일들을 전한다. 여자 때문에 감정이 상한 희준의 태도에 안절부절 못하던 기태는 폭력으로 희준의 마음을 잡으려 하고 희준의 외면과 기태의 폭력이 강도를 더하면서 세 친구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가 조금씩 그 내용을 드러낼수록 관객의 선입견은 뒤집어진다. 학교 ‘짱’이던 기태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 몫으로 여겨지는 자살을 택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듯한 일진이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의해 조금씩 고립되어가는 과정은 고정관념과 배치된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여러 대사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빌려 권력의 독선과 폭력의 파괴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지나가면 없어질 것에 미련을 두지 마라” “너 낙인 찍혀 본 적 있니” “저 애들이 네가 좋아서 네 주변에 있는 줄 알아?” 등의 대사는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뚜렷이 드러내는데 그 의도가 명확해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전체를 핸드 헬드(손으로 들고 찍기)로 촬영했는데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여럿이다. 카메라가 인물들의 얼굴을 바삐 오가며 그들의 흔들리는 감정을 면밀히 포착해낸다. 독립영화답지 않게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은 갈채를 받을 만하다. 후반부 기태의 꿈 때문에 흐느끼며 잠을 깬 동윤이 방에서 거실로 나가 기태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기태의 아버지 전화를 받기 위해 방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현재와 과거, 미래를 자연스럽게 이으며 죽은 친구에 대한 동윤의 회한을 매끄럽게 담아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제작비는 단돈 5,000만원. 윤성현 감독의 나이는 불과 스물 아홉이다. 더욱 여유로운 제작 환경과 넓은 시야로 만들어질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들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뉴커런츠 부문에서 대상인 뉴커런츠상을 받았다. 3월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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