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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의 경제학/ 교육비 때문에… '월세시대' 아직 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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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의 경제학/ 교육비 때문에… '월세시대' 아직 먼 일

입력
2011.02.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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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서초동 반포자이 116㎡를 3억5,000만원에 전세로 살던 대기업 부장 H씨(46)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보증금을 1억원 인상(4억5,000만원)하면서 월 180만원의 월세(보증부 월세=속칭 '반전세')를 받겠다는 것. 그는 고민에 빠졌다. 월소득 600만원(세후)인 그가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재학중인 아들 2명의 공ㆍ사교육비로 나가는 돈은 220만원. 180만원 월세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며칠간 집주인을 설득한 끝에 은행 추가 대출을 받기로 하고 3억원 오른 6억5,000만원 보증금에 재계약을 했다. 그는 "애들 교육비 지출이 없다면 월세도 해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선택"이라며 "대출이자가 부담은 되겠지만 그래도 은행이자 내는 것이 월세 부담보다는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2. 경기 판교신도시 85㎡에 사는 맞벌이 회사원 박연재(42)씨는 최근 임대차 재계약을 하며 2년전 1억5,000만원인 전세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월세 12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도장을 찍었다. 400만원 조금 넘는 소득에,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자녀 교육비로 월 10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가계지출을 고려할 때 상당히 부담됐던 부분. 하지만 박씨는 "달리 구할 전세도 없고 또 집주인이 월세를 강하게 원해 어쩔 수 없이 우선 1년은 보증부월세로 하고 그 후 전세를 3억원으로 올려주는 조건을 달았다"며 "교육비를 줄일 수도 없는 처지라 한동안 살림살이가 빡빡해지겠지만 분양 받은 아파트를 내년에 전세로 놓을 때까지 참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세대란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세입자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보증금을 확 올려줄 것인가, 아니면 보증금을 동결하는 대신 나머지는 월세로 돌릴 것인가.

확실히 집주인들은 월세선호 분위기가 강하다. 지금 같은 저금리 하에서 전세금으로 받은 목돈을 은행에 맡겨봐야 정작 손에 쥐는 이자는 기껏해야 4% 남짓. 차라리 보증금을 덜 받더라도 월세로 돌려 매달 은행이자 이상의 고정수입을 올리는 편이 확실히 낫다. 집주인들 사이에서 '월세연금'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선 "전세 중심의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이 외국과 같은 월세중심으로 전환되는데 이번 전세대란이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전세의 시대는 가고, 월세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만만찮은 시장 저항

전세는 우리나라만의 아주 특이한 임대방식이다. 미국 유럽 등 대부분 나라들은 매달 임대료를 내는 월세 방식이다. 월세보증금도 길어야 1년치, 아니면 2~3개월치만 내는 것이 보통이다.

사실 우리나라 전세는 고금리-주택투기 시대의 산물이다. 외환위기 이전 예금금리가 두 자릿수에 달하던 시절, 집 소유주들은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넣어두면 월 1%정도의 이자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특히 전세보증금에 일부 대출을 더해 집을 한 채 더 사고, 이런 방식으로 집을 몇 채씩 사기도 했는데, 투기적 차익이 가능했던 시절 전세보증금은 '시드머니'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금리시대에서 저금리시대로, 주택시장도 투기시장에서 실수요시장으로 변모하고, 더구나 소득 없이 집만 있는 고령자들이 늘어나면서, 전세보다는 월세선호 분위기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시장이 쉽게 사라지지도, 월세시장이 쉽게 부상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집주인들은 선호할 지 몰라도 세입자들이 원치 않기 때문인데, 그 중심엔 바로 사교육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자녀를 둔 가정에서 가계 지출의 최우선 항목은 단연 교육비. 교육비 지출이 많게는 전체 소득의 절반까지 차지하는 현실에서, 도저히 월세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2년 전에 비해 2억원이나 올려주고 최근 잠실 리센츠 전용 85㎡를 4억3,000만원에 재계약 차모(44)씨는 "맞벌이 부부 월소득 550만원 가운데 중학생 딸 두 명에 드는 교육비 지출이 150만원으로 지출 항목 중 가장 많이 든다"며 "교육비가 드는 한 월세는 생각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아이들 과외비 마련을 위해 외식비를 아끼고, 주부들이 아르바이트까지 나서는 상황에서 월세로 100만원 이상의 고정지출이 생긴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란 얘기다.

결국 사교육 문제가 월세시장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다만 한 공인중개사는 "교육비 부담이 없는 독신가구나 2인 가구 등에선 월세에 대한 저항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월세 얼마나 늘었나

그렇기 때문에 생각만큼 월세가 크게 늘지는 않고 있다.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통계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은 오히려 최근 2년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아직까지 전세 중심의 임대차 패러다임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2008년말 41.2%이던 보증부월세의 비중이 지난달 말에는 40.2%로 소폭 내렸고, 특히 전세난의 진원지인 수도권에서 보증부월세 비중은 2008년 12월 40.5%를 기록했지만 지난 1월에는 35.8%까지 떨어졌다. 서울은 보증부월세와 순수월세 비중은 같은 기간 40.9%, 2.2%에서 각각 35.1%, 2.1%로 감소했다.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 교수는 "10년전 IMF외환위기 이후 전세가 연 16% 이상 폭등할 때도 지금과 같은 월세 확산이 나타났지만 시장구조를 바꿀만한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잠실 반포 등 전셋값이 폭등한 지역을 중심으로 보증부월세 계약건이 늘었지만 이는 국지적일 뿐 시장 전체를 아우를 패러다임의 변화로 보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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