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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두려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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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두려운 봄

입력
2011.02.1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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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모레다. 올 겨울 혹독했던 추위와 지긋지긋한 눈을 생각하면 봄이 어느 때보다 반갑고 마음 설레야 당연하다. 그러나 주위에서 오는 봄을 놓고 온통 걱정들뿐이다. 330여만 마리의 소와 돼지, 6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묻혀 있는 땅이 녹거나 붕괴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정부는 IT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철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지만 전국 4,600군데가 넘는 가축 매몰지가 제대로 관리될지 의심스럽다.

정치적 재앙이 될 구제역대란

축사가 텅 비고 인적이 끊긴 농촌 지역은 경제적 타격은 물론이고 살처분 충격으로 심리적 공황상태까지 겪고 있다고 한다. 돼지고기 값, 우유 등 낙농제품 값 폭등에 도시 서민들도 구제역파동을 피부로 느낀다. 정부의 구제역 방역 초동 대처 실패에 대한 분노에 전세 대란, 물가 급등 사태가 겹쳐 흉흉한 민심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이런 상태에서 4월 재ㆍ보선이 치러지고 내년 총선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여권에는 대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구제역의 2차 피해가 환경대재앙이라면 3차 피해는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이 당할 정치적 대재앙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올 신년 연설에서 구제역이란 단어를 언급조차 안 했던 이 대통령도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엊그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진 국가"라며 "주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독려했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든다. 그런 충분한 역량을 갖고도 구제역을 국가적 대재앙으로 키운 이유가 무엇인가.

경북 안동에서 최초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지자체 방역당국에 들어온 날은 11월 23일이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던 바로 그 날이다. 지역 가축위생연구소의 간이 키트를 이용한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5일 뒤에야 구제역 발생이 공식 확인됐다. 지자체 방역 대처 수준도 문제지만 안보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집중적인 관심을 쏟을 분위기가 못됐다. 그렇다고 면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종합적인 위기관리 체제가 갖춰져 있었더라면 전혀 다른 상황이었을 것이기 대문이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는 달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3월 경기 파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즉각 군대를 동원해 주요 길목을 봉쇄했다. 김성훈 당시 농림부장관은 새벽 2시에 국방장관에게 군 지원을 요청하자 2시간 만에 도로 봉쇄에 군병력이 출동했다고 회고했다. 이번에는 전군에 비상령이 내려진 사정이 있긴 했지만 구제역 발생 두 달이 가까운 지난 1월 15일에야 겨우 군 병력이 도로 차단 등에 동원됐다. 구제역은 이미 대란 수준으로 번진 뒤였다. 그만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 국가안보종합상황실에서 가축 전염병 방역을 국가위기관리 차원에서 관리했다.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실시간으로 현장상황이 전자상황판에 뜨니 보고 지체나 늑장 대처가 있을 수 없었다.

전 정부 경험ㆍ제도 무시한 대가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의 이러한 경험과 제도를 깡그리 무시했다. 작은 정부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관점에서는 비대한 정부기구의 대표적 사례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번번이 낭패를 당하면서 땜질 식으로 시스템을 손질해야 했다. 금강산관광객 총격사망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 등을 거치면서 안보분야의 위기관리 대응체제는 웬만큼 보완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2의 국방이라고 했던 방역 부분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었다.

그 대가를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 톡톡히 치른 셈이다. 그러나 구제역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임기 4년차를 맞아 힘 빼는 일들이 많은 이 대통령에게 올 봄은 또 얼마나 잔인할지 모르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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