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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6> 걸그룹 '걸스토리'의 맹훈련 연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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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6> 걸그룹 '걸스토리'의 맹훈련 연습실

입력
2011.02.1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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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 마루 위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검정과 회색의 투박한 트레이닝을 입은 여성 4명이 옷과는 어울리지 않는 10㎝ 굽의 하이힐을 신고 가수 비욘세의 ‘프리컴 드레스(Freakum Dress)’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서 있기 조차 힘든 하이힐로 돌고 뛰는 빠른 스텝을 밟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삐끗하지 않았다.

기획사 관계자는 “걸그룹 중 무대 위에서 춤추기 편하자고 운동화를 신는 아이들은 없다”고 했다. 하이힐 연습으로 발에 물집이 잡혀 평상시에는 발가락에 붕대를 하고 다닌다는 이들은 가수 데뷔를 목표로 훈련하고 있는 걸그룹 연습생들이다. 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지 이제 딱 1년인 이들은 자신들이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까.

“미히히히요.”

최아란(21)은 30분째 저 소리만 내고 있다. 소리가 배가 아니라 위에서만 나온다는 보컬 선생의 질책에 아직 노래 한 소절도 못했다. “입안에서 소리가 뻗어 나가듯 목소리를 잡으라고.” 선생님의 외마디 고함이 뒤따르자 급기야는 자신의 두 손을 입 앞으로 모아 음을 손으로 잡아 뽑는 시늉까지 하며 소리를 냈다. 겨우 보컬 선생의 입에서 ‘OK’가 떨어졌다. 그가 다음에 한 것은 “마메미모무”, 그 다음은 “카케키코쿠”였다. 발성이 문제라고 했다. 1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7일 오후에 찾아간 서울 여의도동 연습실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아이돌 가수라고 하면 가창력은 간데없고 패션과 외모에만 신경 쓴다는 이미지가 많지만 사실 노래부터 이렇게 혹독하게 공부한다. “노래 좀 한다는 소리를 들어 가수를 한다”고 자랑삼아 말하지만 걸그룹 연습생인 이승현(16)은 이날 소리를 입안에서 굴리라며 “뿌르르르르르”를, 황은진(21)는 목이 안 열렸다며 ‘소리 없는 하품’만을 연신 반복했다. 이은지(19)지는 가사 ‘널 위해’가 자꾸 ‘놀 위해’가 된다는 지적에 자신의 입술을 계속 찰싹 때렸다.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 초짜도 아니다. 이들은 지난해 1월 엔터테인먼트 업체 엔츠스타컴퍼니가 추진 중인 걸그룹 ‘걸스토리’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서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인재다. 중학교 때 가수 보아가 너무 좋아서(황은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춤에 미쳐서(이은지), 고교 때 지역 트로트 가요제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최아란), 자신감 키우려고 초등학교 때 웅변학원 대신 연기학원 다니다가(이승현) 이 길로 들어섰다는 이들은 지난 3~8년 간 한 길만을 걸어온 베테랑이기도 하다.

워낙에 아이돌 지망생들이 많은 탓에 한 번 오디션을 보면 보통 수백 명씩 몰려들어 웬만한 고시나 다름없다. 황은진은 “공개 오디션부터 인터넷 오디션, ARS 오디션까지 안 해 본 게 없다”고 했다. ARS 오디션은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기계음으로 “노래를 부르십시요”라고 나오면 약 30초 정도 부르고 샵(#) 버튼을 눌러 등록하는 식이다. 이를 들은 소속사 관계자가 괜찮다고 판단하면 녹음자에게 전화를 한다. 워낙 가수 지망생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기획사들의 고육지책이다. 인터넷 오디션은 소속사 홈페이지에 자신의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고, 공개 오디션은 10~30명이 단체로 면접을 보는 식이다. 황은진은 “중학교 1학년 때 대형기획사인 SM 공개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심사위원 1명이 10명 단체 면접하는 데 딱 10분 걸렸다”며 “전 이수영의 ‘덩그러니’중 1절의 반에 반도 못 불렀는데 도중에 잘렸다”고 웃었다. 최아란은 “여기 들어오기까지 한 4, 5군데 떨어졌다”며 “오디션 공고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 회원만 1만명인데 전국에 있는 아이돌 지망생들 숫자는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탓에 아이돌이 아닌 아이돌 연습생도 절박하게 매달려야 가능한 일이 됐다. 다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몇 년간 보컬 댄스 연기학원은 기본으로 다녔고, 실력이 모자란다 싶으면 수험 공부하는 학생만큼 시간을 투자했다. 황은진은 “춤 실력이 부족해서 매일 3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다른 가수들의 동영상을 초 단위로 쪼개보며 모든 댄스 동작을 외웠다”며 “그걸 몸으로 익히는 데 일 주일 정도 걸리는데 이 짓을 지금껏 한 백 번은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이들은 지난해 오디션 합격 이후 벌써 1년째 하루 8시간씩 일 주일 내내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오전 10시30분부터 개인 연습을 하고 보컬, 댄스, 연기 연습을 2시간씩 받고 나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9일 오전 10시께 찾아갔을 때도 이미 춤 연습이 한창이었다. 아직 중학생인 이승현은 학기 중에는 수업이 끝난 오후 6시 이후 연습에 참여해 왔는데 이날은 방학이라 아침부터 매연습 중이었다. 10일 고교를 졸업한 이은지는 “다른 고3 친구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부할 때 몸이 지치도록 연습을 했다”며 “지난 1년간 하루도 편히 놀지 못했는데 웬만한 수험생 못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혹독한 자기 관리도 필수다. 최아란은 지난 1년간 몸무게를 7㎏ 정도 줄였다. 살을 빼기 전에도 ‘날씬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앞으로 4~5㎏을 더 뺄 생각이다. 최아란은 “키가 173㎝로 큰 편이지만 몸무게가 40㎏ 후반 대 정도 돼야 TV에서 갸름해 보인다”며 “점심에는 방울토마토나 과일을 조금 먹고 저녁에는 선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연습생 동료들도 마찬가지. 기자가 연습을 지켜보며 9일 오전부터 저녁 10시께까지 함께 했지만 이들이 물 이외에 무언가를 먹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소속사는 트레이닝에 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의 실력이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되면 언제든 아이돌 연습생의 자리조차 박탈한다. 이들은 소속사로부터 한 달에 한 번 서바이벌 테스트를 받고 있다. 소속사 대표와 이사, 부장 등 경영진이 참여하는 자리다. 그동안 배운 댄스와 보컬 등을 선보이고 점수로 평가된다. 점수가 좋지 않으면 팀을 떠나야 한다. 실제 ‘걸스토리’ 연습생은 원래 총 5명이었지만 1명은 실력 부족으로 지난해 말 팀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4명도 언제든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최아란은 “이번 달에도 테스트가 있는데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매번 피가 마른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들을 가장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데뷔. 지난 1년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거쳤지만 그 기간은 사실 약과에 불과하다. 이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류호원 실장은 “유명 걸그룹인 ‘2NE1’ ‘소녀시대’ 등도 적게는 2~3년에서 많게는 5~6년까지 이 생활을 거쳤다”며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간을 두고 연습시킬 필요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돌 연습생들은 그저 볕뜰 날만 기다린 채 기약 없이 견뎌 내야 한다.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냐’는 질문에 이은지가 슬쩍 웃으며 대답한다. “아이돌 연습생이 되고 나서 어머니가 점을 봤는데 22세에 이쪽으로 성공해서 3대가 먹고 살 돈을 번다고 했는데 뭐 이것쯤이야.” 그때까지 이제 딱 3년이 남았다.

아이돌 연습생은 미약한 존재다. 아이돌이 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나비가 되지만 아이돌 연습생은 그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나방이 돼야 한다. 방송을 익히고 싶다며 단역배우도 서슴지 않는 이은지는 지난해 9월 KBS 1TV‘위기탈출넘버원’ 녹화에 참여해 12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에서 멀미로 체해 구토하다 병원에 실려 가는 역으로 출연했고(결국 편집돼서 방송에 1초도 나오지 않았다), 최아란은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중 구미호가 화장을 하고 있는 여대생을 쳐다보는 장면에서 여대생으로 얼굴을 알렸다. 황은진은 올리브TV ‘겟 잇 뷰티(get it beauty)’에서 화장품 소개를 듣는 청중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돌 연습생은 보컬 수업 때 자신한테 오는 지적과 충고를 잊어 먹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노트에 적어 복습하고(이은지), 댄스 수업에서 아무리 연습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에 저도 모르게 분에 차 혼자 눈물을 흘리는(최아란) 열정과 치열함이 있다. 즉흥 연기 수업에서 배역의 감정에 몰입해 눈물을 흘리며 열연하거나(이승현), 매일 집에서 기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왕복하며 연습실에서 연습하는(황은진) 간절함과 진지함도 갖추고 있다. 때로 나방이 나비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이유다.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세화여중에서 31회 졸업식이 있었다. 교복을 차려 입은 이승현이 졸업식이 진행된 대강당에서 교장의 부름에 앞으로 나가 선도부 표창상과 공로상을 받아 들었다. 졸업식을 축하하러 온 부모는 꽃다발을 든 채 활짝 웃는 얼굴로 옆에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날도 그의 가방 안에는 연습복이 들어 있다. 다른 학생 같으면 졸업식이 끝나고 부모와 점심이라도 먹으련만 이승현은 식이 끝나자 마자 가방을 챙겨 들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의 부모는 그저 “딸 아이를 응원한다”며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들은 오늘도 연습실에 걸린 거울을 통해 자신들만을 들여다 볼 것이다. 인고의 시간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 거울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비출 것이다. ‘걸스토리’란 이름으로.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걸그룹 활동 현황

아이돌 그룹 산업은 엄청나게 커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는 아직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아이돌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면서 대부분이 중ㆍ고생인데도 학교와 방송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아이돌 데뷔는 곧 학교 자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법상 학교 수업을 공식적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은 1년 중 현장체험으로 명시된 45일뿐이다.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학교를 못 갈 때 현장체험을 했다는 학습서와 사진을 제출하면 결석 처리되지 않는 제도다. 많은 아이돌이 이 제도를 이용, 학교를 빠지며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규헌 엔츠스타컴퍼니 이사는 "보통 앨범이 하나 나오면 2~3개월 동안 집중적인 방송 활동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45일 이후에는 결석 처리가 되기 때문에 아이돌 가수 중에는 전학으로 학교를 옮겨 다니며 45일을 쓰는 편법을 활용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결국 자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는 경우만 따져도 지금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중 4, 5명이 자퇴한 상황"이라며 "아이돌 그룹이 제2의 한류라며 추켜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정상적인 학교 생활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대비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아이돌 그룹은 한국 예능 산업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아이돌 그룹의 주 활동 범위는 음반 시장이었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드림하이'나 '아테나', 영화 '포화속으로' 등에서 아이돌 가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 이사는 "요즘은 기획사가 소속사 연습생들을 아이돌로 띄운 후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게 하나의 전략으로 자리잡았다"며 "신인 연기자가 주인공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이돌은 고정 팬 층이 있어 기본적 시청률이 되니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메인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돌 그룹의 효용가치가 높아지다 보니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 금액도 커지고 있다. 보통 걸그룹 한 팀을 데뷔시키려면 약 2억~3억원 정도의 투자 비용이 필요하다. 차량 유지비와 방송 진행비(헤어ㆍ메이크업ㆍ트레이닝비), 음반 제작비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도 기획사의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김 이사는 "보통 한 기획사가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5,000만~7,000만원 정도를 들인다"며 "하지만 대형 기획사의 경우 걸그룹 뮤직비디오 한 편에 1억~1억5,000만원까지 투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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