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서울 신길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이복순(49ㆍ여)씨는 은행 대출이자 때문에 살림이 쪼들리지만 거금 600만원을 들여 욕실을 바꿨다. 욕조 서랍장과 주변 장식을 오크 소재로 바꿔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욕조 한 부분도 유리로 막아 마치 고급 호텔에 온 듯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이 씨는 “사위ㆍ며느리감이 왔을 때 우리 가족의 속살이 드러나는 곳이 욕실이라 생각해 리모델링을 했는데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이던 집안의 욕실이 변신 중이다. 단순히 볼일을 보고 목욕을 하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욕실이 개성을 강조하는 공간이자, 반신욕ㆍ테라피 등 웰빙을 만끽하는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TV가 설치된 욕조, 몸에 좋다는 히노끼(편백나무) 원목을 사용한 욕조, 말랑말랑한 신소재를 사용해 넘어져도 다칠 염려가 없는 쿠션욕조, DMB를 장착한 도기 일체형 변기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흐름을 보여주듯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가구거리에는 수입가구점 보다는 욕실 자재ㆍ인테리어 업체의 전시장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이 곳에서 만난 주부 김소영(36)씨는 “가족들이 반신욕을 즐기는데 현재 욕실이 지나치게 습하고 우중충한 느낌”이라며 “분위기도 화사하게 꾸미고 반신욕을 하면서 책도 읽을 수 있는 욕실로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강을 생각해 욕실을 개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물기가 많은 습한 욕실을 건식으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다. 건식 욕실은 욕조와 세면대 외에 배수구가 없다. 때문에 바닥이 항상 말라 있어 곰팡이나 세균이 적다. 서구에서는 대부분 건식 욕실이지만 물청소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동안 외면 받아 왔던 게 사실.
얼마 전 욕실을 건식으로 바꿨다는 김한국(33)씨는 “네 살 난 아들이 목욕하기를 좋아하는데 아무리 청결히 해도 화장실의 곰팡이 등이 맘에 걸렸다”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생활 습관의 변화도 욕실 개조 붐에 한몫하고 있다. 과거에는 욕실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탁기가 대부분 아파트의 다용도실로 옮겨져 건식 욕조로의 변신이 용의해 진 것. 특히 젊은 부부의 건식 욕실 선호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처럼 다양해진 소비자의 욕구에 발맞춰 업체들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욕실 브랜드 전용 쇼룸을 설치하고, 각양각색의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대림비엔코는 9가지 맞춤형 욕실 인테리어 스타일을 선보이며 맞춤형 욕실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샘은 부엌가구 리모델링의 노하우를 살려 욕실 시공과 애프터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업계 최초로 쇼룸을 선보인 아메리칸스탠다드는 4월 새롭게 다시 꾸민 욕실 쇼룸을 공개할 예정인이다. 여기에다 욕실 전문업체인 로얄앤컴퍼니는 물론이고, 건축자재 업체들인 한화L&C, LG하우시스 등도 욕실시장에 가세할 움직임이어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현재 국내 전체 욕실 시장 규모는 2조원, 인테리어ㆍ리노베이션 시장은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재건축 대신 리노베이션이 증가하는 데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욕실을 고객의 취향에 맞게 설계하도록 옵션으로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며 “욕실 개조 붐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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