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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어머니, 제게 더위를 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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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어머니, 제게 더위를 파세요

입력
2011.02.1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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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보름 밥을 해먹지 않는 집이 많은데,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 장을 본다며 아침부터 서둘러 서창장으로 가신다. 어머니는 찰밥에 조기와 여러 가지 나물로 대보름 상을 차릴 것이다. 호두나 밤, 땅콩 같은 부럼거리도 준비하실 것이고 귀밝이술로 막걸리도 한 병 사 오실 것이다. 대보름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해서 달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해도 어머니가 서창장으로 가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대보름이 나에게는 별다른 명절의 느낌이 없는데 어머니에게 대보름은 여전히 큰 명절이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대보름은 풍성함이 넘쳐난다. 어머니의 어머니, 외할머니는 정월 대보름이면 찰밥을 닷 되나 해서 아랫목에 묻어두고 이웃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거기다 12가지 나물, 미더덕 찜, 생선 조림, 탕국 등을 푸짐하게 준비해 놓아도 대보름 저녁이면 동이 났다고 한다. 대보름 명절이 어머니에게 나눔의 좋은 날이 분명한데 날씨 운운 하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에 ‘더위팔기’가 있다.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이 추운 다음 여름은 덥다고 했다. 올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보자면 올 여름도 지독하게 무더울 것이다. 대보름날 어머니에게 내게 여름 더위를 팔라고 해야겠다. 어머니의 더위를 내가 몽땅 사야겠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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