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학교 주변에 살고 있는 나는 평소에 하루 한번은 꼭 통화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샌가 전화로 맨 처음 꺼내는 말이 "오늘은 무사해?" 가 되어버렸다.
지난해 12월 경북 안동시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머리를 무겁게 했다. 23년째 충북 청주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1,200여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후 구제역은 급속도로 퍼졌고 살처분 하기 위해 소를 끌고 가는 장면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얼마 전 집에 들렀을 때 구제역의 심각성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집 앞 입구에는 소독을 위한 흰색의 석회가루가 넓게 퍼져 있었고 부모님은 외출조차 자제하고 있었다. 아버지 휴대폰 메시지에는 구제역 주의 문자가 꽉 들어차 있었고 면사무소에서는 소독과 예방접종 확인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와 평소 알고 지내던 분도 이미 가축을 살처분 한 상태였다. 행여나 우리 집 돼지도 묻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지 슬쩍 물어보았다. "구제역은 천재지변이야.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근데 더 마음이 아픈 건 소나 돼지를 묻은 주인들의 마음이 어떨지 겪어보지 않아도 느껴진다는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직접 느껴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때문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아버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구제역으로 소를 묻은 농가 주인의 사연이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약을 먹으며 생활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의 일기장에는 그날의 가슴앓이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저 죽을 줄 모르고 유인하는 쪽으로 걸어가는 소들을 상상하니 기가 막힌다. 그 동안 더 잘해줄 걸, 욕하지도 말 걸. 마취 주사 맞으며 죽어갈 때 원망은 안했을까…'
아버지는 요즘 텅 비어있는 집 축사를 보는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다. 구제역이 얼른 잠잠해져 피해를 본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다. 축산 농가의 딸로서 전국 모든 축산 농가에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청주 일신여고 3년 나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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