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하도급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현대자동차 사내 하도급 근로자가 원청업체의 지휘ㆍ감독을 받아 근무했다면 파견에 해당하고, 2년 넘게 근무했다면 원청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재확인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노동계는 사내 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쪽에서는 법원이 도급계약의 정당한 업무 협조를 파견계약에 적용되는 '노무 지휘'로 잘못 보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사관계 구조적 문제가 원인
이번 판결은 현대차의 업무지시를 받아 일하는 다른 사내 하도급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사내 하도급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내 하도급은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의 41%가 사내 하도급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과 철강은 전체 근로자의 55%와 41.5%, 자동차는 14.8%가 사내 하도급 형태다. 근로자수는 32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정규직 근로자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급여는 3분의2정도만 받으며 정규직 고용안정에 버팀목 노릇을 하는 신세이니 정규직을 열망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하도급 실태 전반을 들여다보면, 일반 하청기업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대기업 사내 하청 근로자들의 불만은 사치스럽게 비친다. 자신들은 급여와 고용안전은 훨씬 열악한 상태하기 때문이다.
생산과정의 가치창출 기여도가 아니라 어떤 기업에서 어떤 형태로 일하느냐에 따라 급여와 고용안전이 달라진다면 현대차 사내 하도급과 같은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파견법 등을 비롯한 현재의 노동법은 경제 기술 인구구조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현실과 괴리가 크다. 이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업체와 하도급 근로자 사이의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사내 하도급문제는 노사관계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와중에 정규직 노조가 임금을 생산성 이상으로 높이고 경영 사정과 관계없이 고용안정 장치를 강화하자, 그 부담이 비정규직과 하청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기만 한다면 고용 능력은 저하되고 말 것이다.
사내 하도급은 도급과 파견의 중간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의 경제 사회구조 변화는 다양한 고용 형태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법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당사자들의 고용관계 변화와 무관하게 법적 권리 와 의무를 강제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법률주의를 탈피,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고용관계 발전을 도와주는 법치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법 해석도 조문과 자구(字句)에 매달리기보다 현실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공공 이익 돌보는 공정한 기준을
제도 운영의 주체인 노사정은 법으로 고용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사용자는 정규직과 하청 근로자를 아우르는 인적자원 활용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임금과 직무체계를 개선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규직 노동조합도 양보할 것은 과감히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는 갈등을 적극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임금과 고용이 공정하게 결정되고, 노사의 이익 극대화가 다른 당사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사 당사자는 물론 공공의 이익을 돌보는 공정 노동의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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