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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남기웅 감독'을 위하여

입력
2011.02.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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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다. 또 몇 달 만이다. 늘 이런 식이다. 한동안 소식을 끊었다가는 불쑥 연락한다. 피곤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 "선배님, 잘 지내시죠"라는 허름한 첫마디도 변함이 없다. 사실"잘 지내느냐"는 그가 받아야 할 인사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말이 자신은 옛날도, 지금도 여전히 잘 지내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고백임을 알았다.

승자독식 일변도인 영화세상

올해로 마흔 세 살이 된 고향 후배 남기웅. 그는 영화감독이다.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0년 제목도, 형식도, 내용도 별난 디지털 독립영화 로 주목을 받고 이듬해 를 내놨지만, 여전히 낯선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일 뿐이었다.

그나마 애면글면 2006년 5년 만에 세 번째 작품 를 할 때만 해도 춥고 배고파 할 수 없이 처가에 들어가 얹혀살면서 장인어른에게 다시는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거짓 맹세를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영화감독이었다. 영화를 위해 생계를 팽개치고 시나리오를 쓰고 또 썼다. 얼마 안 되는 제작비를 구하려 안 두드려본 곳이 없었다.

그러기를 다시 5년.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내몰았다. 유일한 희망을 가지고 칠전팔기로 도전하고 있는 정부의 직접 제작 지원사업도 끝나버렸다. 오로지 흥행만 탐하는 대기업이 85%를 독과점하고, 그 밑에 소수의 승자들만이 열매를 독식하는 영화판에서 고졸 출신의 작은 괴짜 독립군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단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대기업 투자사에 시나리오를 넣었더니 담당자가 하는 말. "위에서 150만~200만명 흥행기록을 낸 감독 아니면 읽어보지도 말라고 해요. 차라리 신인 감독이 낫대요."그렇다면 이런 구조에서 작은 영화를 해온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시장바닥에서 돈을 구하거나, 나 같은 정말 빼어난 작품으로 대기업 돈 벌어주고 그 대가로 큰 영화 감독을 가는 길 밖에 없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감독만으로 한국 영화는 충분하다는 건가.

결국은 "남기웅 너 자신 탓"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자유경쟁사회,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의 패배자가 무슨 변명인가. 맞다. 그래서 그는 여러 번 영화를 떠났고, 지금도 떠나려 한다. 꿈보다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월세 30만원 짜리 단칸방에 사는 현실이 그에게는 더 절박하다. 슈퍼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아내 앞에서 '영화 감독'은 직업이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했다. 그나마 1,000만원을 받고 4년 전 케이블TV용 옴니버스 영화 의 공동연출자로 참가했을 때가 좋았다. 택배기사도 했고 공사현장 막노동도 했다. 힘쓰는 일에 익숙지 않으니 오래 버티지 못한다. '노가다' 안 하려고 30군데가 넘는 프로덕션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나이 든 독립영화감독의 경력은 소용이 없다. 절반은 백수로 산다.

누구를 위한 선택과 집중인가

그때마다 그는 전화를 한다. 어제도 얼마 전까지 하던 공장에서 양파를 까서 그것을 트럭에 실어 가락시장에 배달해 주는 일을 그만두고 놀고 있다고 했다. 도움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래도 자신의 영화의 꿈을 아는 선배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다. 외롭게 죽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런 그와 따뜻한 된장찌개 같이 먹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늘 마음이 아프다.

영화가 이제는 딴 세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어진 느낌이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가방 안에는 PC방을 전전하며 쓰고, 고치고 또 고친 시나리오 두 편이 있다. 남기웅 뿐이겠는가. 승자독식구조 속에서 소리 없이 절망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영화인들이 있다. 경쟁력도 좋고, 간접지원과 선택과 집중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이들의 꿈과 아픔을 외면하고, 이들을 영화인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해서는 안 된다. 한국영화가 오래오래 살아남으려면.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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