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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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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길

입력
2011.02.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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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꽃 피우려고 온 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 트럭 하나 달려가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꽃 뒤에 가 숨는다 흠칫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가는

짐 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

매요, 알라 뱄지요?"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 모자를 눌러 쓰고 술자리에서 가곡 '명태'를 부를 때 그의 깊은 눈은 지그시 감긴다. 정수사에서 본 단풍나무 한 그루가 천하에 어여뻤고, 고향 제천의 삼탄(三灘ㆍ여울 세 개)이라는 지명이 아름답다던 그는, 참, 시인다운 풍모에 풍류까지 갖춘 사람이다.

산문시의 필수 덕목인 절제가 빛나는 시다. '멀리 군용 트럭 하나 달려가는 걸 보고' 라는 구절은 '달려오는 걸 보고'의 비문 같지만 비문이 아니다. 과감한 생략으로 시의 맛을 탄생시키는 구절이다. 먼 곳이어도 트럭이 날리는 흙먼지가 보였었나 보다. 해서, 아낙은 또 한 대의 트럭이 달려오자, 길가 개나리꽃 뒤에 숨는다. 이 상황을 간파한 운전자는 트럭 속도를 줄인다. 그러자 왜 속도를 줄일까 호로 속에서 목을 뺀 병사가, 꽃 뒤에 은닉한 아낙의 부른 배를 보고, 봄의 작전도로에서는 용서 될 법한 싱거운 농을 던진다. 그 농에 수줍게 웃으며 아낙은 속말로 이런 답을 하였으리라.

'치-, 봄에 알라 안 밴 게 어디 있남! 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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