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판결 의미와 파장은
12년을 끌어온 담배소송에서 15일 항소심이 결론적으로는 원고(폐암 환자와 그 가족)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1심과 달리 폐암과 흡연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여지를 둔 채 공을 대법원으로 넘겼다. 또 한번 상급심 결과가 주목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항소심도 원심과 같이 국가와 KT&G의 손을 들어준 주된 이유는 담배 제조업체가 담배를 고의적으로 결함이 있게 만들거나 유해성 은폐, 허위 정보 제공 등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즉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한 불법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은 1심보다 두 가지 측면에서 한 발 나아가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우선 폐암 환자인 원고들의 흡연과 폐암 발병의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완화한 것이다. 앞서 1심은 담배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제조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흡연과 폐암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입증이 필요하다고 봤다. 반면 항소심은 "담배 연기에는 다양한 발암 물질이 포함돼 폐암 발병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즉 많은 정보를 보유하는 KT&G와 달리 상대적 약자인 원고 입장에선 다른 복합적 요인으로 폐암이 발생할 수 있더라도, 흡연이 원고의 폐암 발생의 한 요인이 됐다는 점만 입증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고에게 입증 책임을 완화했기 때문에 항소심은 원심과 달리 흡연과 폐암 발생의 개별적 인과관계까지 인정할 수 있었다. 1심에서는 흡연과 폐암의 통상적 관련성인 역학적 인과관계만을 인정하고, 다른 요인으로도 폐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어 원고들 각각의 폐암 발생과 흡연의 개별적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흡연=원고 폐암 발생'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은 "원고 중 고령의 남성은 20년간 하루에 1갑 이상의 흡연력을 가졌고, 폐암 진단까지 흡연을 계속했다"며 "이로 인해 편평세포암이나 소세포암이 생긴 것으로 확인된 경우 흡연과 폐암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도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흡연=원고 폐암 발생'이라는 개별적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KT&G의 "폐암의 원인이 흡연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항소심의 개별적 인과관계 인정은 향후 유사 소송이나 KT&G의 사업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불법행위 성립의 중요 요건이자 첫번째로 입증해야 될 것이 '상당한 인과관계'이기 때문이다. KT&G가 승소 판결을 받고도 판결 직후 유감의 뜻을 표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담배소송에서 점차 원고 측에 무게중심을 두는 판결이 내려지자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미지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법률에 따른 사실심리 역할보다 사회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정책심 역할로 전환 중인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사법적극주의를 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KT&G가 1, 2심에서 승소했다 하더라도 유리한 입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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