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작가에게 등단 기회를 주기 위해 서울디지털대학이 최근 주최한 제1회 서울디지털대학 미술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최정규(36)씨. 그는 미술을 전공한 적도, 미술학원에 다닌 적도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의 직업은 미술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군 하사관, 건설현장 일용직, 일식집 주방 보조원…
"어릴 때 화가가 되고 싶긴 했지만 워낙 형편이 어려워 엄두도 못 냈죠." 199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최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하사관에 지원했다. 2000년 중사로 제대한 뒤에는 건설현장 일용직, 각종 배달, 전기 배선, 실내 인테리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인테리어 기술이 손에 익을 때 즈음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일을 꼼꼼히 해 준 덕인지 여기저기서 '빨간 머리 총각' 보내달라는 데가 많아지더군요. 그때 머리를 빨갛게 염색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던 건물이 부도가 나면서 수천 만원을 날리게 되면서 그는 일식집에 취업했다.
최씨가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한 건 일식집 주방 보조원으로 일할 때였다. "쉬는 날에 청담동 갤러리에 우연히 들렀는데, 작품들을 보던 사람들이 '1,000만원 밖에 안 되네' 하는 거에요. '저 정도는 나도 충분히 그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최씨는 습작을 들고 무작정 화실을 찾았다. "화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깐 대학에 가야하고 협회 등록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괜히 물 흐리지 말고 그냥 취미나 하라'는 말에 쓴 웃음만 짓고 나왔습니다."
오기가 생긴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일식집을 때려치우고 3개월 동안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살다시피 했다. 데생 서적부터 시작해 미술 관련 책을 모조리 탐독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 극사실주의로 불린다는 것도, 이 극사실주의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경향이란 것도 그때 알았다. 그 동안 모아둔 돈으로 작업실을 한 칸 마련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렇게 그린 그림을 자신의 인터넷 카페 '레드 마르스(Red Mars)'에 올렸다. 갤러리 전시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최씨 나름의 전시 방법이었다.
그의 인터넷 카페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미대생들과 현직 미술강사들이 그의 진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재 카페 회원만 600여명. 최씨는 "어딘가에 '꽂히면' 끝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화상을 자주 그린다. 이번에 대상을 받은 작품도 제목이 '자화상'이다. "자화상은객관적인 상태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겁니다. 내면의 나와 소통하는 과정이죠. 그래서 더 애착이 갑니다." 주방 보조원이던 자신과 화가가 된 자신을 그는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늘은 모든 이에게 재능을 줍니다. 하지만 본인의 노력이라는 열쇠가 없으면 그 재능은 영영 찾을 수 없는 것이죠."
서울디지털대학 유정현 교수는 "디지털 시대 고등교육의 미래상을 제시한다는 온라인 대학의 취지에 맞게 학력, 나이 등에 상관없이 열린 상으로 공모했다"며 "최씨의 작품은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운 머리 모양, 심정을 드러내 보이는 불만스런 눈초리 등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개성을 훌륭하게 나타낸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최씨의 작품과 우수상을 받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의 추상'(정서윤), '우리의 대화는 짧고 간결했다'(박지은) 등 수상작 27점은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가나아트스페이스(insaartcenter.com)에서 전시된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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