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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다… 후임이 상처받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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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다… 후임이 상처받은 걸"

입력
2011.02.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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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 전의경 342명 인권교육 현장"사랑은 가득~" 노래 부르고 하루 1시간씩 명상"감정통제 못해… 신병 때 나도 그랬는데" 후회"앞뒤 맥락은 다 자르고 신고돼" 억울함 토로도

멀쩡한 1만원권 지폐를 손으로 구기고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구둣발로 몇 번이나 밟아댔다. 정치원 중앙경찰학교 청렴인성학과 교수가 만신창이가 된 지폐를 다시 집어들더니 묻는다. "이 만원짜리가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44명의 교육생이 입 모아 대답했다. 정 교수는 말을 받았다. "만원짜리는 언제 어느 곳에 가도 1만원의 가치가 있듯 사람은 지위, 계급,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가치가 있습니다."

14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 창의관 302호. 교육생들은 지난달 말 전입 6개월 이하 전의경 4,581명을 대상으로 한 가혹행위 피해 신고에서 가혹행위를 했다고 지목된 전의경들이다. 전역을 한 15명과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 1명을 제외한 342명이 지난 10일 중앙경찰학교에 입교, AㆍB반으로 나뉘어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오후 A반 171명은 원형강의동에서 김상균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교수의 '인권과 피해자의 이해' 강의를 들었고, B반 171명은 40여명씩 4개조로 나뉘어 인성 강의를 들었다.

창의관 304호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40여명의 교육생과 권용철 중앙경찰학교 청렴인성학과 교수가 함께 부르는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다. 노래를 마친 후 교육생들은 5세 때부터 앞으로 다가올 55세 때까지 각자 자신의 생애곡선을 그리며 과거와 미래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은 자신의 마음을 열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20분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경비ㆍ생활안전 인권 사례 등 인권 강의와 노래 부르기, 마음 풀기, 내적 심리상태 발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오후 7시부터는 1시간 동안 명상을 한다.

이들은 차차 가혹행위를 뉘우쳐가고 있었다. A 상경은 "신병 시절에 나도 그랬던 것처럼 후임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 화가 나서 주먹으로 머리를 다섯 대 정도 때렸다"며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B 상경은 "이번에 사회에서 배우기 힘든 인권 문제를 배우니 아랫사람 배려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다"며 "입대할 때부터 배웠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후임들이 신고한 이들의 가혹행위가 천차만별이고, 피해자의 신고 내용만을 토대로 추려진 '가해자'들이다 보니 몇몇은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고 했다. C 상경은 후임과 20분씩 서로 안마를 해 준 것이 가혹행위 3가지 중의 하나로 신고됐고, D 상경은 후임에게 부식으로 나온 빵에 들어있던 만화캐릭터 스티커를 달라고 한 것이 괴롭힘으로 신고가 됐다.

C 상경은 "돌이 날아오는 위험한 상황에서 후임이 너무 긴장해서 잘 대처하지 못해 내가 소리를 지르고 정강이를 걷어찬 것은 맞지만, 앞뒤 맥락은 다 자르고 정강이를 찼다는 것만 강조돼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D 상경은 "나는 재미로 후임에게 스티커를 달라고 했는데 후임은 그게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라며 "그 땐 몰랐는데 여기서 교육 받으며 똑같은 행동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 일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에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한 전의경들은 23일까지 2주일 간 인권교육을 받은 후 서울경찰청 벽제경찰수련원에서 1주일 더 교육을 받는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15일 경찰청 경비국장, 민간 징계위원, 전의경 부모 등 8명으로 구성된 전의경인권침해처리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가해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 징계, 전출 등의 조치가 내려지고 정도가 경미하면 원래 부대에 남을 수도 있다.

충주=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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