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사회 현실을 어떻게, 혹은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순수파와 참여파, 낭만주의와 현실주의 등으로 오랫동안 평행선을 달려왔던 문학계의 해묵은 논쟁이 최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을 계기로 온라인상에서 다시 불거졌다. 논쟁의 당사자인 소설가 김영하씨가 13일 블로그와 트위트 활동을 중단하고 작품 집필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지만 한동안 잊혀졌던 질문을 새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다양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논쟁은 당초 최씨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김씨와 문학평론가 조영일씨가 연초부터 블로그를 통해 주고 받던 ‘작가의 정체성’ 문제에서 시작됐다. 김씨는 신춘문예 당선자가 발표된 1월 1일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며 신춘문예라는 제도에 구애받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신춘문예에 낙선한 문학 지망생들을 위로하는 성격이 깔려 있었다. 이에 대해 한국 문단 현실을 줄곧 비판해 왔던 조씨가 “(그런 조언이) 배부른 자의 오만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고 반박하며, 문단 현실을 냉정히 볼 것을 주문했다. 그의 조언은 ‘재능이 없다 싶으면 빨리 관두거나 직접 새로운 제도를 만들라’는 것. 이는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두 사람의 관점차가 깔린 것으로,김씨가 작가의 자기 확신과 예술적 욕망을 강조했다면 조씨는 이를 나르시시즘으로 규정하며 역사적ㆍ사회적 조건에 방점을 둔 것이었다.
이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실천적 대응 차이로 이어졌다. 작가의 궁핍과 소수 독점 구조 등 엄혹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김씨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오직 우리 자신뿐”이라며 “(사막을 건널갈) 자기 내면의 연료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조씨는 “자신만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와중에 최씨가 궁핍한 환경에서 숨진 소식이 전해졌다. 두 사람의 반응도 달랐다. 조씨는 “최씨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면 제도를 바꾸기 위해 힘을 모으라”며 그 실천의 하나로 한국영화 보이콧을 제안한 반면, 김씨는 “(현실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해결된다”며 “세상이 곧 바뀐다는 풍문에 속지 말고 자기 소명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여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최씨와 같이 수업을 들었던 소설가 김사과씨가 “엉망진창인 사회에 맞서 투쟁한다고 해서 예술가의 창작욕이 타락하거나 고갈되는 것은 아니다”며 조씨 입장을 두둔했고, 일부 네티즌이 공격적으로 가세하면서 감정 싸움으로 격화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김씨는 급기야 14일 “논쟁의 파탄은 제 책임”이라며 온라인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리고 “부족한 저는 골방에서 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두운 욕망을 돌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시절 제자였던 최씨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면서 “그녀의 직접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고은이 친구들에게 들었다”며 “진실은 외면한 채 아사로 몰고 가면서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 논쟁은 문인의 존재 방식과 문학의 미래 등의 중요한 쟁점을 포괄한 의미 있는 대화”라며 “사회 속 문학의 지위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논쟁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