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전공인 제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라니, 저도 뜻밖이었습니다.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을 나란히 보는 포괄적 눈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김영나(60)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인사를 비판하는 시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고고학 발굴 현장이나 전시, 박물관 운영에 대해 잘 몰라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기엔 부적합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그러나 조목조목 자신을 옹호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글렌 로리 관장은 이슬람 건축 전공자에요. 어느 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경영도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박물관이 나아갈 방향을 신념을 갖고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한국 근ㆍ현대 미술을 연구해 책을 여러 권 썼고,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15년 있으면서 고고학과 고미술 동향을 쭉 들어 왔어요. 호암미술관의 피카소판화전, 200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 등 전시 기획도 해 봤고요. 2003년부터 2년간 서울대박물관 관장으로 일할 때는 전시가 정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느껴서 전시 공간과 진열장을 개조했고, 핵심 유물이 좀더 잘 보이도록 위치를 바꾸고 전시 성격도 많이 바꿔 봤습니다.”
새 관장으로서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질적 도약을 자신의 임무로 꼽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규모로는 세계 10위 안에 들만큼 성장했지요. 펼치고 확장해 온 시기를 지나 이제부터는 갖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보석같이 갈고 닦아 명실상부 세계적 박물관으로 나아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관심은 박물관을 좀더 편안하고 재미있는 곳,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무척 넓은데 쉴 공간이 별로 없어요. 관객이 배낭이나 오버를 맡길 곳도 마련해야겠고. 박물관은 전시가 핵심인데 전시는 재미있어야죠. 학술적 깊이도 갖춰야겠지만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써야죠. 조명과 컬러도 중요하고요. 외국 박물관에서 보았던 감탄할 만한 전시 방식들을 접목하고 싶습니다.”
그는 특히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처럼 몇 백 명이 우르르 돌아다니는 방식은 문제가 있어요. 20~30명의 소규모로 깊이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죠. 그림 한 점을 보더라도 그 그림이 나온 시대 배경이나 의미 등 역사적 문화적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해야죠. 아이들이 숙제하느라 노트에 설명문 베끼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선친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1945~70)을 지낸 김재원 박사, 언니는 불교미술사학자 김리나(69ㆍ홍익대 대학원 명예교수)씨다. 선친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틀을 잡았고, 특히 6ㆍ25전쟁 때 미군 열차로 문화재를 부산으로 피란시켜 지켰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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