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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으로 2년 연속 젖소 살처분한 포천의 김영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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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으로 2년 연속 젖소 살처분한 포천의 김영석씨

입력
2011.02.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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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기 포천의 영중면 거사2리. 주말을 앞뒀지만, 도로에 차만 지나다닐 뿐 인기척이 없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공터가 보인다. 60~70㎝의 야트막한 높이로 쌓은 흙 더미엔 회색 원통형 파이프 2개가 꽂혀 있다. 마침 이곳을 지나는 주민에게 파이프가 뭔지 물어보자, 그는 찡그리듯 답했다. "얼마 전 소 묻은 곳이잖아요."

참으로 기구한 마을이다. 한번만으로도 끔찍한 구제역을 작년과 올해, 2년 연속으로 겪었다. 마을 전체에 응어리가 생길 만도 했다.

작은 하천인 포천천 위로 옆 마을(양문리)을 이어주는 다리에는 '농장간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시 방역당국의 현수막만 바람에 펄럭였다. 그 곳에서 약 1㎞가량 들어가니 또 젖소 농가가 나왔다. 주인은 김영석(55)씨. 그의 축사 옆 텃밭에도 마을 입구에서 봤던 것처럼 회색 파이프가 보였다. 3개씩 2열 종대로 모두 6개다. 김씨는 애써 그곳에 시선을 두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쪽은 올해 부분 살처분 해 묻은 거고, (파이프가) 비스듬히 꽂힌 쪽은 작년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1,980㎡규모의 축사에는 젖소 33마리만 남아 휑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정부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간이키트에서 음성 나와도 정밀검사하기로 해 놓고 안 지켜서 결국 전국으로 퍼지고, 나도 또 당한 거 아니야"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두 번이나 살처분한 사연을 묻자 눈을 지그시 감은 그는 구제역과의 질긴 악연을 풀어놨다.

시작은 포천의 한 농가에서 첫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된 작년 1월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당 농가를 찾은 수의사가 간이키트로 검사한 결과 음성으로 나왔지만, 며칠 뒤 정밀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명됐다. 이 수의사는 그 사이 김씨를 비롯한 축산농가 약 20곳을 다녀갔다. 방역 당국은 이 수의사가 다녀간 모든 농가에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내렸다. "구제역도 안 걸렸는데 57마리를 모두 묻었어. 다른 농가한테 피해가면 안 되잖아. 자식 같은 놈들인데…."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구제역이 끝났다. 김씨는 텅 빈 축사를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살처분(마리당 220만원), 유대(원유값) 등 보상금 1억9,000만여원으로 젖소를 사려 했지만 값이 마리당 350만원까지 올랐다. 추가로 9,000만원을 대출받아 소 69마리를 샀다. 다행히 자리를 잡아 가을부터는 하루 원유 쿼터량(1,300㎏)을 생산할 수준으로 회복했다. 대학생인 세 자녀의 등록금(약 1,300만원)도 감당하기 어려워 1학기 땐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2학기에는 등록금도 댈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암운이 드리웠다.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첫 발생 후, 다음 달 경기 양주ㆍ연천(14일)에 이어 기어코 포천(21일)까지 덮쳤고, 며칠 후 이웃마을까지 집어 삼켰다. "우리 집에서 500m 남짓 떨어진 곳이었어.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될 처지여서 잠이 안 오더라고. 친구한테 전화해 '작년에 전부 매몰했는데 또 당하게 생겼다. 참 이런 경우도 다 있냐'며 하소연을 했어. 그런데 방역관이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 사이에 포천천이 흘러 왕래도 없고, 생활권이 다른 점을 감안해 살처분 대상에서 빠졌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는 백신 접종(지난해 12월 31일)도 마치고, 한 달 가량 외출도 안 했지만, 결국 지난달 20일 다리를 저는 젖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끝내 양성판정을 받았다. 이후 침을 흘리고, 혓바닥과 입 주변에 수포가 생기는 의심증상을 보인 소가 전체 78마리 중 45마리나 발생했다. 다만 백신접종 후 항체형성기간(2주)이 지난 소는 매몰처리 하지 않는 부분 살처분 정책으로 바뀌는 바람에, 45마리만 묻었다. 덜 묻었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김 씨는 매몰 이후 일주일 가량 패닉 상태였다. "두 번씩이나 산 놈들을 묻는다고 생각해봐. 축산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더라고."

김씨는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1월 중순부터 마을 입구에 설치된 간이초소가 사라진 것도 불만이었다. "집배원이나 택배 배달자들은 소독을 잘 안 하더라고. 사람이 부족한 거야 알지만 이래서 쓰나."

김씨는 다시 마음을 추스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소를 사올 곳도 없어 다시 원상 회복하려면 몇 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기약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글·사진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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