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를 더 이상 소수자의 인권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반(反) 군사주의, 평화운동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합니다. 적정병력 규모와 징병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임재성(31)씨는 전과자다. 고려대 법대 재학시절이던 “인간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죽이지 않을 권리도 있다”며 2004년 말 군대 가기를 거부해 2006년 5월까지 꼬박 1년6개월 감옥에서 살았다. 이후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임씨가 최근 라는 책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공감’을 호소하고 나섰다. ‘인권’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평화’의 관점에서 이들을 이해하자는 것. 그래서 지난 12일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without.org)’ 사무실에서 만난 임씨의 주장은 적극적이었다. “해마다 25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끌려가는’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해야 할 때입니다. 전쟁과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임씨는 7년여 전 자신이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재판장에게 무죄를 내려달라고 했을 때 돌아온 건 비아냥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뿐이었다고 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세계 평화? 너네 집 평화나 먼저 지켜라’고 놀리더군요.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어머니는 접견 시간 8분 동안 한마디도 못하고 울기만 하셨어요. 제 발로 감옥에 간다는데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2006년 5월 출소할 때 임씨의 부모는 “죄를 진 것도 아닌데 두부를 왜 먹냐”며 용기를 주었다.
임씨는 출소 후 평화활동가로 일하면서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인 평화 연구에 나섰다. 지금은 폭력의 사회학과 징병제를 화두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군사주의를 걷어내려면 군사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징병제를 정면으로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는 “전쟁 준비가 정상적인 사회활동으로 인식되고, 징병제는 손 댈 수 없는 것으로 신성화하고 있다”며 “군사주의에 침윤된 한국 사회에 의식적으로 균열을 내는 게 평화운동”이라고 말했다. “1949년 병역법을 제정할 때만해도 한 국회의원이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들 가운데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군사주의가 그만큼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임씨가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집회나 시위도 없이 조용한 게 평화라고 여기겠지만 시끄러운 저잣거리 같은,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웃고 떠드는 게 오히려 평화가 아닐까요? 무바라크의 하야를 이끌어낸 이집트 사태를 보더라도 30년 동안 이어져 온 계엄 상태에서 사회가 더 조용했겠죠. 그러나 진짜 평화라면 시끄러운 얘기도 기꺼이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