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즉각 사임'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등 무바라크 퇴진 직전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힘겨루기가 숨가쁘게 전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바마는 민주화 시위 발생 후 무바라크와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 첫 번째 통화에서 오바마는 퇴진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시위대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무바라크에 촉구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시위가 야권의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형제단과 이란의 사주를 받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둘은 1일 재차 극적으로 충돌했다. 무바라크가 대선 불출마로 시위대 요구를 무마하려는 대국민연설을 한 직후였다. 오바마가 "충분치 않다. 다음 정부를 제시해야 할 때"라며 사실상 즉각 퇴진을 압박하자 무바라크는 "3, 4일 뒤 다시 얘기하자. 그 때 되면 당신은 내가 옳았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접촉을 끊었다. 이집트 시위가 격화하자 오바마가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으로 일찌감치 입장을 굳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미 행정부가 무바라크의 퇴진 시기, 개혁의 속도 등을 놓고 혼선을 빚은 것은 미국의 대 중동 외교노선에 대한 백악관과 국무부의 근본적 시각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백악관은 이집트 민주화를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보았으나 미 국무부는 중동에서의 미국 영향력 고수, 평화협정 유지, 이스라엘 안보 등 국익과 실용적 가치를 우선시했다.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클린턴의 독일행 동행을 막판 취소한 것도 이런 갈등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가 결국 퇴진한 것은 이집트 군부의 압박이 결정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집트 군부는 9일 '무바라크 퇴진' 방침을 정하고 무바라크에게 "사퇴하거나 권력을 이양하라"는 군의 입장을 전달했다. 무바라크로부터 권력 대부분을 이양 받으려는 이집트 군부의 당시 계획은 '협의에 의한 퇴진' 보다는 강하고 '소프트 쿠데타'보다는 약한 것이었다. 미 정보당국이 무바라크가 곧 사임할 것이라고 한 것도 군부의 이런 동향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바라크가 예상밖으로 10일 연설에서 즉각 퇴진을 거부하자 이 연설에 앞서 "시위대의 모든 요구가 충족될 것"이라고 예고했던 이집트 군부는 경악했다. 군은 연설 후 수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발적을 퇴진하라, 아니면 강제로 내쫓길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무바라크에게 전했다. 이에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도 군부의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무바라크 퇴진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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