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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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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날

입력
2011.02.1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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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못자리 무논에 산그림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물처럼

한 사람이 그리운 날 있으니

게눈처럼, 봄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는 것 같은 오후

자목련을 넋 놓고 바라본다

우리가 믿었던 중심은 사실 중심이 아니었을지도

저 수많은 작고 여린 순들이 봄나무에게 중심이듯

환약처럼 뭉친 것만이 중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리움이 누구 하나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아닌지 모른다

물빛처럼 평등한 옛날 얼굴들이

꽃나무를 보는 오후에

나를 눈물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믐밤 흙길을 혼자 걸어갈 때 어둠의 중심은 모두 평등하듯

어느 하나의 물이 산그림자를 무논으로 끌고 들어갈 수 없듯이

●‘개가 똥을 눌 때 개의 모든 근육은 항문을 향해 집중된다.’ 20여 년 전 읽은 장쥬네의 소설 의 한 대목이다. 개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문장이 정확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중심은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라니. 여린 새순을 통해 봄나무의 중심은 푸른 은하수처럼 흩어지고 물과 어둠은 더 나아가, 어디에도 없고 전부에 있기도 한 평등한 중심이라니. 그리움도 특정 대상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라 물빛처럼 평등해진 옛날 얼굴들 전체에 대한 그리움일지 모른다니. 시인의 마음이 순해져 넓어지니, 세상도 중심을 풀어 놓는구나.

아, 바람을 차고 오르는 방패연의 뚫려 없는 가슴, 그 중심을 한참 바라다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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