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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가격 폭등ㆍ민주화 열기에 30년 철권통치 막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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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가격 폭등ㆍ민주화 열기에 30년 철권통치 막 내리다

입력
2011.02.1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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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전격 사퇴]무바라크 퇴진 의미와 과제무바라크 옹호하던 美, 중동정책 재점검 불가피이집트 민주화의 미래 9월 대선결과에 좌우될 듯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결국 30년 철권통치의 막을 내렸다. 지난달 25일 시작된 이집트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11일 무바라크 퇴진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1막을 내렸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권력을 군부가 승계하는 과정에서 혼선도 불가피해 보인다. 결국 이집트 민주화의 미래는 9월 대선 결과에 좌우될 전망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을 결정한 것은 국내외에서 사임 압력이 거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1981년 집권 이후 야당의 정치적 부상을 용납하지 않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을 억압하면서 권력을 유지해왔다. 또 밖으로는 중동전쟁을 치렀던 이스라엘과 맺은 1979년 평화협정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나갔다. 8,000만명이 넘는 인구와 미국의 막강한 경제 군사 원조 덕분에 그는 아랍권 맹주 자리를 지키며 무리 없이 권좌를 유지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식량가격 폭등과 튀니지 등의 민주화 열기 속에 무바라크 대통령도 그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지난달 25일 카이로 중심부 타흐리르광장에 시위대가 모여 들면서 그의 통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숨죽이고 있던 이집트 민주화 세력이 결집했다. 무슬림형제단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시위가 활발해졌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면서 희생자도 날이 갈수록 늘었다. 정부는 100여명 안팎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외부에선 300여명(휴먼라이츠워치 추산) 이상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900명 희생설도 나왔다.

이런 혼란에 대해 미국 등 국제사회도 점차 관심을 보였다. 이슬람 근본주의 득세를 우려하던 미국마저 '질서 있는 권력 이행'(orderly transition)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2주 이상 시위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은 9월 대선 불출마, 개헌위원회 구성,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이양 등의 수순을 밟다 11일 퇴진하고 말았다.

이번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 남긴 영향도 만만치 않다. 일단 중동에서 60년 이상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국의 쇠퇴가 눈에 띈다. 미국은 무바라크 친미 정권을 옹호하다 결국 군부 주도 하의 과도정부 체제를 지지하는 상황으로 계속 후퇴하면서 모양새를 구겨야 했다. 미국의 중동정책, 외교정책 전반의 재점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 미완에 그칠지, 완성에 이를지도 관심이다. 트위터 등으로 시위 상황을 전파하다 구금됐던 구글 임원 출신의 와엘 고님과 타흐리르광장을 지켰던 수많은 시민들은 향후 이집트 민주화의 거름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척박한 민주주의 토양이 얼마나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군부가 미국의 묵인 아래 과도정부에서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추가충돌도 불가피하다. 이에 이집트 야권 및 민주화 세력이 반발한다면 시위가 재개되면서 상황은 악화할 수도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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