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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드/ '아랍의 봄'은 과연 오는가, 신기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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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드/ '아랍의 봄'은 과연 오는가, 신기루인가

입력
2011.02.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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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천연자원과 대테러 협력 등을 통해 친서방 정부를 유지해 온, 그래서 서방으로부터 '민주화 예외지역', '독재 용인 지역'으로 인정받은 아랍권에 반정부 시위가 들끓고 있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을 필두로, 들불처럼 일어난 민주화 요구에 30년 독재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반정부 시위 물결은 알제리, 리비아, 요르단 등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 전반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국제사회는 걷잡을 수 없게 된 아랍권 반정부 시위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1989년 동구권의 붕괴로 세계 이데올로기 지도가 재편된 것처럼 아랍권 전체가 민주화의 봄을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신중론이 교차하고 있다.

●낙관론 "아랍 최대국 이집트 시위 여파 커…美도 마냥 독재지지 못할 것"

지난달 14일 23년 독재자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될 때까지만 해도 반정부 시위가 아랍권 전체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집트 반정부 시위는 예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미 정치가들 대부분은 아랍권 체제가 결국 무너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하든, 임기를 마치는 올 9월까지 자리를 보전하든 상관 없이 '독재를 용인하는 독특한 아랍 문화'라는 서구의 인식은 깨질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영향력은 튀니지와는 달리 이 지역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집트는 8,000만 명이 넘는 아랍권 최대 인구 규모, 수에즈 운하로 대표되는 경제력, 막강한 군사력, 역사와 문화까지 아랍권을 대표하는 국가이다. 이런 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지 불과 6일만에 30년 동안 독재를 이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재스민 혁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토머스 피커링 전 이스라엘 및 요르단 주재 미국 대사는 진단했다.

게다가 '독재청산과 민주화'라는 서구적 가치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미국이 대놓고 독재자의 편에 설 수 없다는 것도 아랍권 반정부ㆍ민주화 시위를 꺾을 수 없는 요인이다. 미국이 이집트 사태를 지켜보며 "각 나라의 미래는 그 나라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대외적으로 무바라크 정권에 점진적 권력이양을 촉구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튀니지, 이집트 반정부시위에서 드러났듯 시위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아랍권 민주화 열풍에 결정적 요소일 수 있다. 요르단과 시리아는 물론이고 예멘 등지서도 SNS를 통해 시위가 조직되고 시위 상황이 전달되면서 더 이상 과거처럼 언론이 통제된 채 억압으로 일관할 수 없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2일 "21세기형 미디어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매개로 모인 청년들이 20세기형 독재정권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아랍권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높은 학력에도 불구, 실업률도 높아 시위 주도층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에게 SNS는 시위 확산의 기폭제다.

●신중론"경제서 촉발돼 시위동력 약해…서구, 강경정권수립 좌시 않을 것"

튀니지,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아랍권에 던진 파장은 크지만 그렇다고 아랍권 전체의 독재정부가 시민혁명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전망도 그리 많지는 않다. 알제리나 예멘, 수단 등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발은 됐으나 혁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우선 주변의 권위주의적 정권들이 민심 회유에 나서 불길을 초기진압하고 있다. 이집트 처럼 군사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알제리, 리비아, 시리아 등의 경우, 튀니지, 이집트 시위 과정에서 보듯 일자리 창출과 경제 개혁을 약속하는 민심잡기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반정부 시위가 거셌던 알제리는 최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19년 동안 이어온 국가비상령 해제 등을 약속,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보고 있다.

각국이 처한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체제 전복이 어려운 나라들도 많다. 아랍권 최빈국 중 하나인 예멘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남북간 민족 갈등이 더 심해 대규모 시위가 조직되기엔 벅찬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국가의 경우, 막대한 원유와 천연가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반정부 시위의 입지를 현저하게 줄이고 있다. 군주제 국가인 요르단, 바레인, 모로코 등에선 경제 문제와 집권층 부패로 시위가 빈번하지만 국민의 불만은 대개 내각을 향한 것이지 국왕에 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이슬람 공포증'도 아랍권의 권위적 정권 유지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미국 등 서방사회는 아랍권의 정권을 입맛대로 고르지는 못할지라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부상을 수수방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랍권의 안정은 이스라엘의 존재가 관건인 만큼 이스라엘에 적대적이고 하마스에 우호적인 이슬람 세력의 정치권 전면 등장은 미국을 긴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 반정부 시위는 주 원인이 경제 문제여서 이데올로기 변화를 수반한 1989년 동구권 민주화 도미노와 달리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떤 혁명이든 체제 전환엔 내적 동력과 함께 외부의 직·간접적 지원이 필요한 데, 냉전 이후 서방의 아랍권 지원은 혁명 완성엔 부족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동구권 붕괴에는 서방의 인정과 원조 약속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 아랍권 시위는 외부에서 도움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美 중동정책, 자국 이익따라 갈팡질팡… 혼란 부추겨

이집트 등 중동 아랍권의 민주화 전망을 낙관하기 어렵게 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갈팡질팡 외교정책이다. 국가이익과 민주주의 대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지역의 독재정권을 묵인했던 미국의 중동정책 후과가 최근 잇따르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 흐름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아랍권은 미국의 핵심 국가이익이 걸린 지역이었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소련 견제, 안정적 석유자원 확보, 이스라엘 보호 차원에서 이 지역의 중요성이 급부상했다.

그 분수령은 1967년 아랍과 이스라엘 간 6일전쟁이었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의 든든한 후견자가 됐고, 소련과 경쟁하며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중동평화 노력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이 자국 이익만 중시하는 미국의 뜻대로만은 되지 않았다. 핵심 친미국가였던 이란은 팔레비 왕조의 독재가 79년 혁명으로 막을 내린 뒤 이슬람 신정국가로 돌변했다. 80년대 미국이 이란 견제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라크는 이후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지역의 폭군이 됐다.

2001년 9ㆍ11테러는 결정타였다. 80, 90년대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는 반미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의 입지만 강화시켰다. 결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힘을 바탕으로 한 독재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주장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후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체포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지역 내 친미 독재정권은 손을 보지 않고 그대로 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와서 변화의 노력이 감지되는 듯 했다. 2009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의 카이로연설은 이슬람과의 화해 시도로 국제사회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지속된 겉과 속이 다른 미국의 태도는 이번 이집트 시위 진행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미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보여준 혼선은 (중동) 정책들이 필요에 따라 대충 그때그때 봐가며(on the fly)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05년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도 카이로연설에서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민주주의 희생 속에 지역의 안정을 꾀했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잡지 못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며 미국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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