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맷값 폭행'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부자 A가 형편이 어려운 B에게 1대에 100만원씩, 20대를 때리고 2,000만원을 준 사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A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위법 문제를 빼놓고 만약, 1대에 100만원을 준다면 B의 입장에 설 사람이 없을까. 줄을 서라면 그 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A의 입장에 설 사람은 없을까. 말할 수야 없겠지만 수천만원이나 수억원 정도는 내놓을 수 있다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교통위반 범칙금 4만~6만원이 B와 같은 사람에겐 하루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A의 부류에겐 '껌 값'도 안 된다.
■ 돈의 액수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판이하니 같은 잘못에도 소득과 재산에 따라 벌금(범칙금)을 차별하는 '일수(日數)벌금제도'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1992년 법무부의 형사법 개정 때,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논의과정에서 거론됐으나 흐지부지된 바 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소득연계형 범칙금제도'를 검토해 보라고 했으나 유야무야됐다. 검찰이 생계형 범죄에 한해 깎아주는 의미로 시행을 검토했으나 의미가 없었다. 일수벌금제도를 굳이 '노블리제 오블리주 법'이라 부르는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않은 탓이다.
■ 1921년 핀란드에서 이 법이 처음 시행됐고,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따라 하고 있다. 노키아의 부회장이 과속운전으로 11만6,000유로(약 1억7,400원)의 벌금을 냈고, 식품회사 상속자도 비슷한 일로 21만6,000달러(2억4,000만원)를 물었다. 핀란드에서 음주운전에 적발되면 자신의 한 달 소득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어느 경우든 소득이 낮은 노동자 등 생계형 범법자는 처지를 감안한 '징벌적 부담'을 물도록 한다. 영국의 경우 1992년 이 제도를 시범적으로 실시했으나 보수층의 반발로 중단됐고, 미국은 일부 주(州)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 일수벌금제도는 이미 2009년 11월 국회법사위에 회부돼 있다. 대표발의자인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올들어 계속 법안 심의를 주장하고 있으나 주위에선 무관심하다. 이 대통령이 '소득연계형 범칙금제도'를 거론했을 때 민주당은 "친서민 정치쇼"라고, 자유선진당은 "법의 공정성을 위협한다"고 반대했다. 다행히 김황식 국무총리가 이 제도의 효과성에 공감하고 이귀남 법무장관도 검토할 뜻이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굳이 '핀란드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야 없겠지만, 취지와 의미를 우리에 맞게 살릴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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