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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정상(頂上)정치와 정상(正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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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정상(頂上)정치와 정상(正常)정치

입력
2011.02.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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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정치는 극소수 정치보스가 이끄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와 정치인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정치가 제도 틀 속에서 원칙과 규범에 따라 예측성 있게 움직여야 정상이라 할 수 있다. 몇몇 최고 정치지도자끼리 영수회담을 통해 전격적으로 활로를 뚫는 정상(頂上)정치는 정상(正常)정치가 아니다.

만병통치약 기대는 잘못

영수회담 정치가 갈등을 봉합하고 교착을 푸는 극적 요소를 지닌다는 점에서 현실상 간혹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엘리트주의 색채가 짙어 민주주의 가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상황을 오히려 더 꼬이게 할 수도 있고 정치의 제도화를 해쳐 장기적으로 국정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한국 정치에선 아직도 영수회담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해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경향이 있다. 여야의 극심한 대결로 정치가 파행하고 교착될 경우, 대통령 주재 당대표 영수회담이 야당의 국회 등원 및 정치 정상화의 최고 명분으로 거론되곤 한다. 실제 성공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논란만 일으키기도 한다. 요 며칠 사이에도 정치 공전을 깨기 위해 대통령과 야당대표의 영수회담을 하니 안 하니, 제2 야당 대표도 끼니 안 끼니,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한꺼번에 만날지 순차적으로 만날지 논란이 많다. 영수회담을 원내대표끼리 합의한 것이 옳으니 그르니 논란도 있다.

정치인 누구든 서로 만나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통령도 여야 당대표를 만나고, 당대표끼리도 만나고,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함께 섞여서도 만나고, 양자가 만나기도 하고 다자가 만나기도 하고 ... 영수회담으로 부르든 정상회의로 부르든, 혹은 그냥 회동으로 부르든 최고 정치지도자의 모임이 많을수록 좋다.

문제는 거기에만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공식 혹은 비공식 정치대화의 하나이어야지, 정상적 정치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가 돼선 곤란하다. 정당이나 정부를 대표하는 극소수 지도자 간의 합의나 논의가 정치를 결정적으로 추동할 경우 민주주의 이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명색이 독립적 헌법기관인 대다수 의원들과 다른 정치인의 역할은 의미가 없어진다. 개인적 자율성이 들어설 여지는 없어지고 집단주의적 획일성이 정치권을 지배하게 된다. 보스끼리의 '통 큰' 정치는 권위주의 체제나 조폭 세계가 아닌 민주체제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현실적 위험 부담도 크다. 영수회담마저 막힌 정국을 뚫지 못할 경우 거기에 참석한 보스들의 정치적 입지에 민감한 영향이 끼치므로 거센 책임 공방이 정치 갈등과 교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로, 영수회담 치는 정치의 제도화에 타격을 가한다. 최고 수준에서 나서야 활로가 뚫린다면 평소 정상적 제도와 경로는 경시될 것이고 제도화 노력도 동력을 잃을 것이다. 사람들은 난국에 직면할 때마다 위에만 의존하려 들고, 정해진 제도 틀 속에서 스스로 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기 쉽다.

유권자 등 폭 넓은 설득을

영수회담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요즘처럼 정국이 꽉 막혀 적대감이 팽배할 때는 유용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있어야만 정치가 정상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상적 정치를 촉진하는 여러 요소의 하나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정상 정치를 대체하거나 그 전제가 될 수는 없다.

대통령과 당 대표 등 최고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요즘처럼 정치 불신이 심각한 때에는 고도의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다. 다만, 그 리더십은 유권자와 다른 정치인을 두루 설득해 함께 교착을 풀고 시스템이 상향식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몇 명이 전격적으로 만나 의사를 결정하고 하향식 지침을 내리는 것은 정상적 정치일 수 없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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