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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디지털 휴머니즘' "독립적 사고를 먼저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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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디지털 휴머니즘' "독립적 사고를 먼저 가져라"…

입력
2011.02.1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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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론 레이니어 지음ㆍ김상현 옮김

에이콘 발행ㆍ304쪽ㆍ2만원

과히 디지털 혁명시대다. 혁명을 이끈 이들은 컴퓨터과학 분야 종사자다. 본거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지만 디지털 문화가 창출되는 어느 곳이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사람들은 혁명가가 가져다 준 인터넷 세상에 열광했다. 혁명가들은 그 답례로 대중에게 블로그와 위키피디아를 무료로 마음껏 쓸 수 있게 해 줬다. 대중들은 자유롭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주워 담는다.

'가상현실 대부'라 불리는 컴퓨터과학자인 저자 재론 레이니어(50)도 뛰어난 혁명가였다. 그는 작곡가가 되려고 고교를 중퇴했고, 컴퓨터에 빠졌다. 1980년대 후반 컴퓨터를 이용해 여러 사람이 가상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가상인간 아바타 개념을 최초로 개발했다. 수술 시뮬레이션, TV프로덕션의 가상세트 등 다양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도 대중에 선보였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 쓴 책 <디지털 휴머니즘> (원제 You are not a gadget)은 그가 준 혜택을 누린 대중에 대한 가혹한 경고다. 저자는 "무엇인가를 공유하기 전에 당신은 당신만의 독립적 사고와 의지를 가진 진짜 사람이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책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집단 지성에 반기를 든다. 저자는 인터넷으로 대중들이 정보의 공유라는 크나큰 혜택을 누린 게 된 데는 수긍하지만 이로 인해 컴퓨터 기술을 무조건 신뢰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온라인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대표적 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구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편집 생산해 낼 수 있게 됐고, 이를 공유한다.

이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대규모 협업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익명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개인의 목소리와 창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이를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더 규격화하고 익명화한 형태로 옮겨 개인의 개별적 목소리를 철저히 빼앗는 집단주의의 한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가리켜 '인공두뇌적 전체주의'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혹자는 저자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의 인쇄 기술을 반대했던 위축된 중세교회 관료에 비유하기도 한다. 저자가 지나치게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 이에 대해 저자는 "인쇄의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인쇄되는 기계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인쇄물을 창조해 낸 사람이다"고 반박한다. 인쇄기는 인간이 일궈 낸 작품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고 작품을 만든 인간이 먼저라는 얘기다. 이는 디지털 시대도 마찬가지다.

책은 인터넷 공간이 가져다 준 편리함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책은 2006년 와이어드(미 정보통신 전문 웹진) 발행인 케빈 켈리는 인터넷의 발달로 '한 권의 책'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책이 스캔된 뒤 컴퓨터에 저장돼 언제든 검색이 가능하고 마음대로 뒤섞을 수 있게 되는 세상이 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전 세계 책이 한데 다 모여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 그 이후가 더 문제"라며 "책의 출처와 맥락을 전혀 알 수 없이 다양한 표현을 거대한 죽처럼 하나로 뒤섞어 버리는 디지털 압착화로 인해 세상에는 유일하고 독점적이며 잔혹한 책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문제는 또 있다. 인공두뇌적 전체주의가 집단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부메랑처럼 대중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 페이스북 트위터 위키피디아를 자주 사용하고, 인터넷 발달을 찬미하는 대중이 타깃이다. 이들은 매일 블로그를 끊임없이 관리하고, 페이스북 친구 숫자를 센다. 사진을 찍고, 정보를 퍼 나른다.

그러면서도 트롤(악성 댓글 또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저자는 이 같은 가상공간에서 맺어진 관계가 현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단정짓는다. 저자는 "이들은 마치 정치인처럼 조심스럽게 즉흥적 발언을 관리하고, 파티에서 찍은 거리낌 없는 사진을 추적해야 한다"며 "온라인에서 위선은 보상받고 진정성은 평생에 걸친 흠집을 만든다"고 꼬집었다.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가열차게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저자는 정작 본인이 인터넷 반대주의자는 아니라고 역설한다. 다만 인터넷이라는 도구에 갇혀 인간이 가진 창의성을 죽여서는 안 된다 걸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눈부신 기술적 도약을 기본으로 갖추고 나면 기술 자체로부터 거리를 두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 강약조절이 필수라는 얘기다.

그래서 저자는 익명으로 글을 올리지 말 것을, 자신의 목소리와 표현력을 가다듬는 데 열중할 것을, 몇 주가 걸리더라도 숙고와 내면의 성찰이 요구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릴 것을 주문한다. 비판에 따른 대안이 다소 힘이 빠진다. 또 책은 어려운 컴퓨터 용어에서 오는 생경함과 번역체 특유의 어려운 문장도 극복하지 못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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